미래 통일 대한민국을 전망하는
이응준 작가의 『국가의 사생활』

  • 524호
  • 기사입력 2023.09.27
  • 취재 유영서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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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는 13세~18세 청소년 1천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통일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통일이 매우 필요하다는 응답은 8.9%로 집계됐으며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응답까지 포함하면 통일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답변은 53.8%였다. 민주평통의 성인 대상 1분기 통일여론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73.4%인 것에 비하면 통일 필요성에 공감하는 청소년 비율이 상당히 낮다.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이 통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응준 작가는 통일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 『국가의 사생활』을 출간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이 책을 소개하면서 최근 한국인들은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 “무관심, 의심, 심지어 반대”한다고 전하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응준은 미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어두운 도전(Black Challenge)”을 시도했다고 언급했다. 더불어 이응준 작가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낭만적 통일주의는 허망한 꿈”이라는 말과 함께 그의 소설은 통일 이후 벌어질 수 있는 현실적이고 어두운 상황을 묘사한 것이며 미래 한반도 통일을 성찰적으로 대비하는 일환이라고 밝혔다.


“내가 통일 대한민국을 소설로 썼던 까닭은 남한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낯설게 성찰해 봄으로써 그것들이 통일 이후 어떻게 변이 확대돼 갖가지 증오와 폭력으로 창궐하게 될 것인지를 질문하고 싶어서였다. 통일은 대박이니 쪽박이니 하는 서툰 관념이 아니라, 희망보다 난해하고 절망보다 또렷한 혼돈일 것이라는 현상을 제시하고 싶어서였다. 뭐든 제대로 알고 준비를 해야 극복하고 치유하여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 환란으로 가득한 한반도 통일 이후의 삶

2011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에 흡수통일 된다. 통일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고 5년이 지난 2016년, 통일 한국은 혼돈과 공포로 가득 차 있다. 일자리를 잃은 북한의 120만 대군은 폭력조직을 만들고 정부가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무기는 흔하게 유통된다. 또한, 통일 대한민국 정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들의 전부를 주민등록화 하는 데에 실패하면서 근대적 기록이 부재한 국민들, 즉 대포 인간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혼돈은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남한 전역의 유흥가는 ‘북한여성 항시 대기’라는 문구로 취객을 유혹하고 남한의 기업들과 부자들은 북한의 황폐한 땅을 사재기한다. 심지어 1950년 한국전쟁 이전의 부동산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까지 잇따랐다. 통일 대한민국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고 남과 북의 갈등은 점차 고조됐으며 국가의 공권력을 벗어나 날 것의 세상이 펼쳐진 곳이다. 이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곳이 통일 대한민국의 모델하우스인 광복빌딩이다. 이곳은 온갖 욕망과 잔인한 폭력 그리고 살인도 서슴지 않는 북한 인민군의 폭력조직, ‘대동강’의 본거지로서 조직이 운영하는 유령회사와 고급 룸살롱 ‘은좌’ 그리고 지하에 시체를 화장할 수 있는 비밀공간까지 갖추어져 있다. 광복빌딩의 1호 땅굴과 2호 땅굴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은 철근콘크리트의 벽의 두께를 뚫지 못하거나, 호화로운 술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와 온갖 소음들 속에 파묻혀 버린다. 『국가의 사생활』은 광복빌딩을 본거지로 삼는 대동강의 모습을 통해 국가라는 공식적이고 승인된 통치조직의 이면에 잠재해 있는 음침하고 어두운,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이 소설에서 북한 사람들은 통일 대한민국의 구성원이 됐지만 소외된 개인으로서 불법과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사회 공동체의 변방으로 밀려난 사생활로 치부된다.


| 이루지 못한 마음의 통일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에 비해 개인의식은 미약한 반면 집단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기보다는 남에게 의지했고, 권위주의적인 환경에서 자라 자기 욕망의 표현 방법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했다. 그들은 주로 자기보다 높은 자의 명령을 따르고 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에서 행복과 존재감을 부여받았다. 사회주의형 인간은 전체 속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눈치를 살피거나 남과 스스로를 비교하고 더 나아가 인정과 애정을 요구한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북한 사람들은 동족인 이남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얻길 바랐으나 그것이 좌절되고 그러한 감정을 적절히 토로할 길도 막혔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시장과 화폐 그리고 경쟁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자유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무작정 평등만 앞세운다고 비난한다. 남한 사람에게 북한 사람은 게으르고 경쟁력 없는 인간일 뿐이었고, 북한 사람에게 남한 사람은 거만하고 인색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통일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남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고 통일 대한민국에서 북한사람들을 그들과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았다. 북한 사람들은 통일 대한민국에서 2등국민이거나 주민등록조차 없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령에 불과했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은 점차 이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고, 원인 모를 실종 사건이 일어나면 북한 사람은 ‘식인귀’와 같은 유언비어의 주인공이 됐다. 통일 대한민국은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마음까지 통일시키지 못했다.



“리강은 생각했다. 이북 사람들과 이남 사람들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서로가 서로의 신랑과 신부가 됐더라면 이런 나라이진 않을 텐데. 돈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음만은 분단이 되지 않았을 텐데.”



| 변화를 통한 치유

이응준 작가는 북한 인민군의 폭력조직인 대동강의 우두머리 오남철과 2인자 리강의 삶을 통해서 혼돈 속의 통일 사회를 서술한다. 오남철은 분단시절 북한의 수용소를 탈출해 신분을 숨기고 살다가 서울에서 ‘북한에서의 경력이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린 북한 출신 엘리트’를 규합해 폭력조직 대동강을 조직했다. 오남철은 대포인간으로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리강의 출신과 배경을 이용해 폭력조직을 운영한다. 그는 일방적인 흡수통일로 인해서 삶이 망가진 북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데 이번 테러를 통해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를 탓하며 증오하고 폭력이 난무하길 기대한다. 반면, 일제강점기 독립 투사이며 북한의 혁명 원로였던 이장곤의 손자인 리강은 인민군 정예요원 출신이다. 통일 이후 그는 대동강에서 행한 모든 결정의 공식적인 책임자로서 존경을 한 몸에 받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를 ‘이미 죽었는데도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통일 대한민국에서 삶의 방향과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폭력조직 대동강에서 차갑고 단순한 폭력기계로서 살아가고 있다. 허무주의적 태도를 가진 리강은 『국가의 사생활』에서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치유 받는 인물로 존재한다. 리강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하며 방황 속에서 힘들어 하던 중 오남철의 삐뚤어진 욕망을 알아차린다. 이에 리강은 테러는 변화의 모색이 아니라 남과 북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갈등과 증오를 남길 것을 직감하고 오남철의 테러를 막아선다. 통일 대한민국에서 삶의 방향을 상실한 채 지극히 사소한 존재에 불과했던 리강의 삶은 이 일로 인해 더 강하고 아름다워진다.



“2023년, 통일 12년. 통일 대한민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아플 뿐이었다. 아프다는 것은 아직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작은 알은 거대한 물고기가 되고 그 거대한 물고기는 다시 거대한 새가 된다. 폭풍과 해일은 하늘로 이어진 길이다. 죽음을 거절해 아파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는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이응준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환란은 그래서 때로 필요하다.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변화해 치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사생활』에서 리강은 인간다운 삶에서 멀어지는 통일 사회를 안타까워하면서, 오남철에게 순종하는 모습이 아닌 그의 테러를 막아서는 인물로 변화의 장관을 펼쳐낸다. 리강은 2023년에도 여전히 현실의 삶이 외롭고 힘겹지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인파 속을 다시 걷는다.



이 소설에서 그린 것처럼 통일 대한민국은 환란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나 리강의 삶이 그러했듯 통일 대한민국은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치유 받을 것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이선우는 리강에게 이렇게 메일을 보낸다. “나는 너를 만나서 좋았다. 좋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과는 다르지. 행복은 불행 속에는 있을 수 없지만 좋다는 것은 불행 속에도 있으니까”. 한국이 통일되어 불행을 겪게 되어도 언젠가는 서로에게 “너를 만나서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