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세상을 가치 있는 곳으로’,
이원준 교수의 『빌둥에서 배운다』

  • 525호
  • 기사입력 2023.10.12
  • 취재 송유진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 조회수 2318

“저는 우리 학생들이 이 시대에 나아가서 그들이 원하는 꿈을 펼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경험과 역량을 쌓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역자 이원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 대학과 인디애나 대학에서 경영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인간 중심의 창업 교육 모형 개발을 위해 ‘기업정신과 혁신센터’를 개소했으며, 앙트레프레너십 전공을 개설하여 실행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2017년부터 성균관대학교 SeTA (Social Entrepreneurship Team Academy)를 이끌며 세상을 더 가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고 있다.


“빌둥(Bildung)은 도덕적, 정서적 성숙이다. 한 개인이 사회에서 번영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고 지식을 갖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 삶의 길을 개척할 자율성을 가지는 동시에 문화와 공동체에 깊이 뿌리내리는 것이다. 따라서 빌둥은 항상 개인적이고 독특하다.”


빌둥은 간단히 말해 도덕적, 정서적 발달과 교육을 결합한 개념이다. 덴마크는 이 개념을 대중화하고 폴케호이스콜레(folk-high-school)로 실현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빌둥에서 배운다』는 전 세계에 포크빌둥을 확산시켜, 현명하고 가치 있으며 행복한 미래를 향한 길을 함께 열어 나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Q. 책을 번역하시게 된 계기가 창업 교육에 대한 고민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운영 중인 seTA 프로그램에 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2013년에 퇴임하신 경영대학 장영광 명예교수님과 오로라(주)의 노희열 회장님께서 기금을 조성해 주신 게 SeTA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비즈니스로 성공하는 것보다는 거기까지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도전 정신, 그리고 부딪치는 삶의 자세 등을 배워서 ‘좁은 껍데기를 깨고 나가는 교육’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6년 교육과정, 기업가정신과 혁신센터를 만들면서 핀란드의 창업 교육 모형을 발견했습니다. 핀란드는 스타트업이 정말 활성화된 나라예요. 이 교육 모형을 들여다보면서 (무릎을 ‘탁’ 치며) ‘아 딱 내가 바라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북유럽에 뿌리를 두고 있는 ‘팀 아카데미’라는 창업교육 방법론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렇게 2017년, 스페인의 몬드라곤 대학의 팀 아카데미와 HBM 사회적 협동조합과 힘을 합하여 SeTA를 처음 시작했어요.


제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특히 주목했던 것은 개인과 팀의 성장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점이에요. 진정성을 가지고 사람들이 상호작용 할 때 기적이 일어나요.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죠. OECD 회원국 대상 공동체 지수에 의하면, 북유럽이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한국은 거의 꼴찌를 차지했어요. 우리 사회의 현주소입니다. 엄청난 교육을 받으면서 지식을 머리에 채워 넣지만, 머리 아래, 그러니까 가슴 내면의 작동과는 상관없는 교육이 이뤄지는 거예요. 사회에서도 사람을 도구적인 객체로써 쓰다 보니 공동체 지표가 좋은 순위가 나올 리가 없죠. SeTA는 결국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진정성 있는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올 수 있게 하는 모임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이 더욱 성숙한, 책임감이 강한 존재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2013년에 시작했던 여정이 어느덧 10년째를 맞이했고 여기까지 왔네요. 우리 사회에 맞는 우리만의 철학이 프로그램으로 탄생하는 것이 필요해요. 이제는 학교라는 공간을 넘어서 실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배움이 사람의 성장과 함께할 수 있는 교육환경이 조성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SeTA 13기 데모데이 


저자 레네 레이첼 안데르센은 덴마크의 경제학자, 작가, 미래학자이며 빌둥 운동가이다. 로마 클럽의 정회원이자 덴마크 코펜하겐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노르딕 빌둥 (Nordic Bildung)의 공동 창립자이다.



Q. 저자는 아무래도 덴마크의 관점에서 책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관점에서 조금 보태고 싶으신 내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배고프니까 잘 살아보세’라는 말이 있었죠. 잘 먹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생산성, 효율성, 가성비라는 단어로 세상이 돌아갔던 것 같아요. 17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 들어오면서 수많은 혁명이 유럽에서 일어났습니다. 덴마크의 지식인들은 혁명을 통한 체제의 변화에 사회가 적응하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독일의 빌둥 철학을 일찍이 가져온 것입니다. 도덕적, 정서적으로 성숙해 있지 않다면 힘은 또 다른 폭력적인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낙농업 발달을 위한 생업 기술 교육, 마을의 문제 자체적 해결 등 사람이 영글 수 있는 교육을 했어요. 이 교육 방식이 거름이 되어 지금의 북유럽을 만든 겁니다. 사실 혁명을 통해 사회가 완전히 바뀌는 건 어려워요. 통찰력 있고 실행력 있는 리더십이 덴마크를 바꿨고, 그렇게 북유럽이 천천히 바뀌었죠. 우리도 이제 ‘한강의 기적’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해요.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어떻게 더 나은 곳으로 바꿀 것인가 하는 앙트레프레너의 마인드를 가져야 하죠. 지금 한국 교육에는 이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대학까지 오는 데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정말 많이 봤어요. 우리 사회가 경쟁이 굉장히 심해서 불안하게 느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해요. 정서적으로, 도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 협력이 나에게 득이 될 수 있음을 느끼는 과정이 있었더라면 세상을 직면하고 헤쳐 나가는 우리의 삶의 자세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복잡한 세상을 견디기 위해서는 마음 근육이 필요해요.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마음의 근육이 있는 사람은 삶을 걸어갈 힘이 생기는 것이거든요.


‘성균관대학교 출신의 학생들은 뭔가 좀 달라. 개척하고 도전하는 힘이 있으면서 마음이 굉장히 따뜻하고 협력할 준비가 되어있어’와 같은 평가를 받길 바라요. 성균관대학교 출신 학생들뿐만 아니라 모든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해서 사회에 나오길 바라죠.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확장하며 개인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 필요해요. ‘나’라는 존재가 커질 필요가 있다는 거죠. 더 큰 공동체를 마음에 품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비로소 포용할 수 있게 돼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는 나의 성장을 가속화하면서 나 혼자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죠.


요즘 세상은 넓어요. 아주 촘촘하게 연결된 초연결 사회이기에 나의 책임감은 한없이 크면서도 내가 즐길 많은 기회도 문이 활짝 열려 있어요. 세상에 관심 가지고 많은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앙트레프레너십 전공과 SeTA에도 많은 학생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