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정,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526호
  • 기사입력 2023.10.27
  • 취재 유영서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 조회수 1041

빅터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로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우울증과 자살에 관심이 많아 정신과 전문의가 된 후 3만 명의 자살위험성이 있는 여성들을 관리·치료했으며 유대인 거주지 ‘게토’로 강제 이송되어 일반의로 근무할 때도 열정적으로 자살 방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빅터 프랭클은 온 가족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가야 했다. 그는 각기 다른 수용소로 흩어진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혹독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2차 세계대전 전부터 발전시켜 온 로고테라피를 완성하는 데에 집중했다. 이후 ‘로고 테라피’는 정신요법 제3학파로 자리 잡았으며 미국정신과협회는 정신치료에 대한 공헌을 인정해 빅터 프랭클에게 1985년 오스카 피스터상을 수여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겪은 혹독한 경험을 담담한 시선에서 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정립한 로고테라피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고 삶을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은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에서는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고통스럽고 참혹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제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에서는 로고테라피를 소개하고 이 기법을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제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은 로고테라피 이론의 핵심을 보충 설명하며 인간의 의지와 삶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이름도 없이, 기록도 없이 죽어 간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시련,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독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독자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내가 겪은 일을 기록해 놓을 책임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강제 수용소 속 빅터 프랭클의 삶은 결코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죽은 사람이 먹다 남긴 감자를 낚아채야 했고, 시신이 신고 있는 신발을 자신의 것과 바꿔야 했으며 죽은 사람의 외투를 챙겨야만 했다. 이런 참혹한 상황에서의 일상이 순탄할 리 없음에도 수감자는 환경에 적응한다. 이를 닦지 못해도 잇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했고, 셔츠 한 벌로 반년 동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입었다. 수도관이 얼어붙어 손 하나 제대로 씻을 수 없었지만, 흙일을 하다가 찰과상을 입어도 상처가 곪는 법은 없었다. 이를 통해 프랭클은 어떤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의지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수용소 안에서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 힘든 삶을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는 법을 찾아 낸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어도,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고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인간이 어떻게 고난과 고통에 반응하는지 세 단계로 정리했다. 첫번째 단계는 놀람과 충격이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부정한다. 야간 열차를 타고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며 충격 받는다. 두번째 단계는 무감각이다. 이 단계에 들어선 사람은 참담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감정이 무뎌져서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 것이다. 혐오감과 공포, 동정심 같은 감정을 더는 느낄 수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에 신경 쓴다. 세번째 단계는 비통과 환멸이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비참함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돌아간 고향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고통을 견뎠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음에 대해 비통해 한다. 물론 그들은 해방되었을 때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지 못하리라는 것은 수용소에 있을 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어 나타나면, 더구나 앞으로의 삶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불행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 환멸감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가스실 직전에 촬영된 빅터 프랭클이 수감되어 있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 로고테라피: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수용소에서의 경험은 ‘미래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미래에 올 ‘자유’를 바라며 수감자가 혹독한 하루를 견디는 것처럼, 인간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다. 동시에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빅터 프랭클이 수용소에 있을 때 한 수감자는 자신의 꿈에서 3월 30일에 해방 될 것이란 말을 들었다며 희망과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3월 30일이 가까워졌음에도 해방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3월 29일, 그 수감자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결국 3월 31일에 사망했다. 사망의 직접적 요인은 발진 티푸스였으나 결정적 요인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상실한 것이었다. 수감자는 기대했던 해방의 날이 오지 않아 절망했으며, 이는 잠재해 있던 발진 티푸스균에 대항하던 저항력을 떨어뜨렸다. 실제로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사망률이 엄청난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는 가혹해진 노동 조건, 식량 사정 악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감자들이 갖고 있던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이뤄지지 않아 생긴 절망감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기대’는 내일로 나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로고테라피의 핵심이다.


로고테라피(Logotherapy)에서 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로고테라피는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의미는 유일하고 개별적인 것으로 반드시 그 사람이 실현해야 하고, 또 그 사람만이 실현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노력은 마음에 평온보다는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이때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돼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생기는 긴장은 개인으로 하여금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다.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잘 살아남았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전장을 던지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그동안 숨어 있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빅터 프랭클은 시련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의미를 발견하는 데 시련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시련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련의 도전을 용감하게 받아들이면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를 갖게 되며 그 의미는 글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보존된다.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다.


“시련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명백하게 밝혀지면서 우리는 수용소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무시하거나 거짓 상상을 하거나 억지로 만들어 낸 낙관적인 생각을 즐기는 것으로 그것이 주는 고통을 감소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됐다.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시련 속에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준다. 인간이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고 희망을 가질 때 얼마나 강해지는지도 일깨워준다. 세상은 여전히 살기 힘들다. 어떤 세대도 순탄한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이를 얻기 위한 용기마저 잃어선 안 된다. 시련에 좌절하는 삶보다는 이를 발판 삼아 성장하는 긴장감 있는 삶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인생이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