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이야기로 현재를 돌아보다’,
김초엽 작가의 『행성어 서점』

  • 531호
  • 기사입력 2024.01.07
  • 취재 이주원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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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하고 따뜻한 SF 소설이 궁금하다면



과학적 상상력은 상상함으로써 기술적으로 발달한 세계를 우리에게 가까이 가져온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와 그 속의 인간을 대하는 윤리적 관점을 새롭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SF 소설은 세계 그 자체를 바꾸어 볼 수도 있는, 과학적 상상력이 자유롭게 뛰어놀 최적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알 수 없기에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미래를 사랑한다면, 다채롭게 그려진 미지의 일을 다룬 『행성어 서점』은 당신의 취향에 꼭 들어맞을 것이다. 『행성어 서점』은 총 14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SF 장르의 매력에 빠지고 싶은 사람, 하지만 긴 이야기를 소화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김초엽 작가는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SF 작가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국내 SF소설 열풍을 끌어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초엽 작가는 주로 소수자들의 이야기, 타인의 주관적 세계에 닿으려는 시도, 인간의 개체성 및 고유성 등의 문제를 현실에서의 재현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통해 살핀다. 작가가 산뜻한 이야기의 마을에서 데려온 짧은 이야기들을 감상해 보자.



1.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 8편


▶ cyborg_positive


「#cyborg_positive」는 기계 눈을 가진 사이보그 ‘리지’가 아이보그 사에서 받은 홍보 모델 제안을 두고 망설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리지’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기계 눈 제품들을 리뷰하는 영상을 올려왔다. 기계 눈의 초기 모델은 아주 부자연스러웠고, ‘리지’는 영상 채널을 시작해 혐오를 견디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자 했다. 그 결과 대중들은 기계 눈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으며 ‘리지’는 제작사인 아이보그 사에서 홍보 모델 제안을 받게 되었다. 아이보그 사에서는 사이보그 신체만이 지닐 수 있는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캠페인으로 사이보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려 한다며 ‘리지’를 설득한다. 그러나 브이로그에 달리는 기묘한 동정, 잘못된 선망으로 얼룩진 댓글들은 ‘리지’를 자꾸만 붙든다.


“저도 언니와 같은 모델을 쓰면 그렇게 예뻐질까요. 저는 보통 눈을 가지고 있는데, 기계 눈을 가지고 싶어요.”


여전히 기계와 인간의 몸은 잘 적응하지 못하고, 적응할 법하면 새로운 제품이 출시된다. 회사들은 기능성 제품군과 미관을 중시한 제품군을 따로 내놓으며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훌륭한 제품은 아주 비싼 가격에 판매한다. 사이보그를 향한 시선과 아이보그 사의 판매 전략, 그 한가운데에 선 ‘리지’와 함께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질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보자.


“모든 사이보그는 아름답다는 말이 정말로 사이보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인지, 리지는 확신이 없었다.”


▶ 행성어 서점


“인류의 모든 뇌에 수만 개 은하 언어를 지원하는 범우주 통역 모듈이 설치된 이 시대에도, 어떤 이들은 낯선 외국어로 가득한 서점을 거니는 이국적인 경험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이방인으로서의 체험. 어떤 말도 구체적인 정보로 흡수되지 못하고 풍경으로 나를 스쳐 지나가고 마는 경험…….”


행성어 서점에서는 해석되지 않는 책들을 판매한다. 이 서점의 책들은 전자뇌의 통역 모듈을 방해해 이 행성의 언어를 따로 배우지 않는 한 읽을 수 없게 되어있다. 서점에서 일하는 ‘나’는 행성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알리고 싶어 ‘행성어 교본’을 만들어 배포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체념한 채로 펼쳐지지도 않을 책들을 기계적으로 팔고 있다. 그러던 와중 찾아온 특이한 손님을 전뇌 방해 테러에 이 서점을 이용하려는 테러범으로 오해한다. ‘나’는 이후 손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선천적 모듈 부적응자로, 이 서점을 발견한 후로 행성어를 따로 공부했음을 알게 된다. 일반으로 분류되는 범주 안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은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을 겪고 싶어 하는 가운데, 소수자들은 소수를 누릴 특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를 제외하고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았던 책의 두 번째 독자를 만나게 된 ‘나’의 기쁨에 주목해 보길 바란다.


▶ 포착되지 않는 풍경


사진작가 ‘리키’는 일반적인 데이터 형식을 사용하는 촬영 기술이 뮬리온-846N 행성의 입자로 인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어 사진 파일이 손상되는 어려움을 겪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행성으로 왔지만 결국 촬영도 기록도 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리키’의 글을 본 관광객들은 드물고도 아름다운 기상현상을 직접 보기 위해 행성으로 온다. ‘리키’는 끝까지 그 장면을 찍기 위해 노력하지만 성공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을 광경을 눈에 담고, 기술로써 포착할 수 없는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는 사람을 지켜본다. 「포착되지 않는 풍경」을 통해 기술의 끝없는 발전, 동시에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는 한계 앞에서 찾게 되는 익숙하고 오래된 방식의 가치를 돌아보길 바란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기록하는 것. 그게 리키의 일이었지만, 어쨌든 어떤 순간들은 오직 직접 본 사람들의 마음에만 남았다.”



2.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 6편


▶ 시몬을 떠나며


시몬 행성 사람들은 모두 기하학적 문양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소은’은 시몬 행성 가이드북을 제작하기 위해 행성으로 왔고, 떠나기 직전 행성 사람인 한 여성과의 대화를 통해 가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시몬 행성 사람들은 외계 기생물이 가면처럼 얼굴에 들러붙었지만,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음에도 그대로 살아가고자 했다. 사람은 각자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가고,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과 진심 간의 간극은 우리를 종종 괴롭힌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됨으로써 시몬 사람들은 더 이상 억지웃음을 지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그 뒤에 존재하는 진짜 얼굴이란 무엇인지 고민해 보며 「시몬을 떠나며」를 읽어보자.


“가면은 거짓 표정을 만들어내는 대신 서로에게 진짜 다정함을 베풀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게 시몬 사람들이 여전히 가면을 쓰는 이유랍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우리 인류는 지금껏 살아왔던 것과 점차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만 그 속에서 우리가 찾게 될 차별과 공존의 문제들은 범위가 넓혀질 뿐, 유사한 것들이다. 『행성어 서점』은 지금 현실에도 존재하는 문제들의 시공간적 배경을 넓혀 상상하고 생생히 묘사한 글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미래의 관점에서 문제를 읽으며 현재를 돌아보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사이보그에 대한 시선이 담긴 「#cyborg_positive」, 소수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유대감을 제시한 「행성어 서점」, 촬영될 수 없는 풍경을 마음에 담는 이야기인 「포착되지 않는 풍경」, 진짜 표정 대신 진짜 마음을 생각하는 「시몬을 떠나며」. 그 외에도 따뜻한 마음과 굳은 의지가 담긴 이야기들이 과학적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그려졌다. 미래의 것이자 동시에 현재의 것인 문제를 상상하고 공감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