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시처럼 아름답고 간결한 언어’,
『수학을 시로 말하다』 인터뷰

  • 535호
  • 기사입력 2024.03.11
  • 취재 이주원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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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만물의 이치가 농축된 수학 시”


이경식 교수(필명, 이시경 시인)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근무 후 1985년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원(NIST)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1990년 성균관대학교로 부임해서 2020년까지 교수로 재직했고, 미국 로체스터대학과 애리조나대학에서 방문 교수로 있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대학 명예교수인 이경식 교수는 수학·과학·문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독특하고 다양한 창작물들을 탄생시키며 어렵다고 여겨질 수 있는 학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시한다. 저서로는 시집 「쥐라기 평원으로 날아가기」, 「아담의 시간여행」, 「라마누잔의 별 헤는 밤」, 「n평원의 들소와 하이에나」 등이 있고, 교양과학/과학에세이 도서로 「과학을 시로 말하다」가 있다.



Q. 수학을 시에 담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에서 수학 수업은 일반적으로 따분하기 쉽습니다. 저도 정보통신 대학에서 공학 수학을 강의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으나 수강생들은 수업을 그리 즐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수학을 가르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수학 개념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종종 시를 지어서 강의 자료와 함께 아이캠퍼스에 올린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Q. 수열의 규칙성은 예술 분야에서 종종 드러나며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수열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예술이나 자연 속에서 수열이 자주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수열도 아주 많으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수열은 더 많습니다. 유명한 수열 중에는 그래프의 모양이 나비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수열도 있고,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를 내는 레카만 수열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유명한 수열은 피보나치수열입니다. 피보나치수열은 1, 1, 2, 3, 5, 8, 13, 21, 34, ... 이런 식으로 끝없이 나열되는데, 이전의 두 정수의 합이 다음 정수가 되는 수열을 말합니다. 이 수열의 특징 중 하나는 연속하는 두 수의 비율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율인 ‘황금비’ (golden ratio, 약 1.618)라는 데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이나 예술품에서 자주 황금비와 피보나치수열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술 작품 중에는 밀러의 ‘비너스’ 조각상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이 있습니다. 자연에서도 자주 피보나치수열이 나타나는데, 수벌의 가계도, 해바라기의 나선, 잎사귀의 배열, 솔방울 등이 있습니다.




Q. ‘미분은 수학의 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만물은 항상 변합니다. 밀물과 썰물의 파고가 시간과 위치에 따라서 변하고, 인체의 세포 수도 시간에 따라서 변하고 우리 삶도 늘 변화합니다. ‘미분’이란 어려운 개념이 아니고 변화하는 정도, 즉 ‘변화율’을 말합니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것들은 미분으로 나타낼 수 있고 이것을 식들로 나타낸 것이 미분방정식인데, 아직 많은 사람이 ‘미분방정식’ 심지어 ‘미분’ 이야기만 나와도 주눅이 들어 버립니다. 이 중요한 개념을 이해하기가 쉬운데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미분에 비중을 두어 반복적으로 거듭 강조한 이유는 그만큼 미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잠깐 우리 주변을 둘러볼까요. 눈사태가 일어나고 밀물 썰물이 반복되는 현상과 같은 자연 현상들을 포함해서 우리 주변의 전기적, 기계적 또는 생체적 현상들도 미분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물론 뉴턴의 두 번째 운동 법칙과 아인슈타인의 중력 법칙도 미분방정식입니다. 이렇게 미분은 우리 삶 속에서 아주 중요하지요. 수많은 현상을 간단히 미분으로 축약할 수 있다니, 미분을 매혹적인 꽃이라 할만하지 않은가요?



Q. 수학적 내용을 담은 시를 쓰실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교수로서 대학에서 강의한다는 것은 저에게 행운이고 기회였어요. 어떻게 창의적으로 준비해서 학생들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을까를 고민한 적도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수학 강의를 준비하면서 수학이 자연스럽게 시 안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 후 아예 수학 시집을 염두에 두고 시를 창작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시집이 『라마누잔의 별 헤는 밤』(2022)입니다. 이왕 ‘시 쓰기’ 얘기가 나와서 여기서 제가 많이 사용하던 두 가지 방법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하나는 ‘수학적⬝과학적 상상력으로 시 쓰기’이고요, 다른 하나는 수학적 상상력을 넘어 ’수학으로 시 쓰기’입니다. 두 경우 모두 수학을 삶 속에서 되씹는 몇 차례의 과정을 밟아서 태동했는데요. 후자의 경우는 좀 더 적극적으로 수식이나 수학적인 기호를 시어나 시 문장처럼 사용하는 시 창작법입니다. 수식이 어떻게 ‘시어’나 ‘시 문장’이 될 수 있느냐고요? 아인슈타인도 “수학은 그 자체로, 논리적 사고의 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자의 예는 시집 『아담의 시간여행』(2018)이나 『n평원의 들소와 하이에나』(2023)에서 찾을 수 있고, 후자의 경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국제언어문학 53호』와 『예술가, 509호』에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Q.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수학의 아름다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리 주변에는 아름다운 수학들로 가득합니다. 간단히 몇 마디만 얘기해 보겠습니다. 무인 우주 탐사선 로제타호를 아시나요? 인류가 쏘아 올린 그 탐사선이 10년 동안 65억 km를 비행한 끝에 2014년 11월에 혜성에 무사히 탐사로봇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성공하기까지 숱한 수학이 관여했고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그러니 수학이 아름답지 않은가요? 또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앞에서 피보나치수열을 언급할 때 자연 속에 자주 나타난다고 말했는데, 식물의 꽃잎 수는 주로 피보나치 수를 따릅니다. 식물들도 벌이나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서 곤충들이 선호하는 가장 아름다운 수가 피보나치 수라는 것을 아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꽃잎의 수가 5장이 가장 많은데 왜 하필 4장도 아니고 6장도 아니고 5장을 택했을까요? 우리도 별과 별 문양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바로 5각형 속에는 별 문양이 들어있지요. 숫자 5는 동식물이 가장 선호하는 수가 아닐까요?



Q.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융합의 효용성이 여러 분야에서 입증된 바 있어서 이제 융합은 선택이라기보다는 필수입니다. 저도 자칫 따분할 수 있는 수학 강의에 시를 넣어서 학생들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었고, 수학과 시를 융합해서 시집과 교양서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개 이상의 학문이나 기술을 서로 융합해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있는 자기의 주특기가 있어야 하고, 다음은 다른 것과의 융합을 창의적으로 미리 계획하고 잘 준비해야 합니다. 졸업전까지 전공과 부전공을 공부하는 시간은 대학생들에게 미래의 융합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큰 꿈을 꾸는 젊은이들에게 타 분야와 융합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도움이 된다면 타 분야를 전공한 친구나 AI를 보조원으로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끝으로, 이 글이나 신간 서적, 『수학을 시로 말하다』을 접한 분이시라면 한 번쯤이라도 주변의 문제들을 수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