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조지 웰스의 ‘투명 인간’

  • 452호
  • 기사입력 2020.09.22
  • 취재 김지현 기자
  • 편집 김민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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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꼭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남들이 지니지 못한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어떤 욕망들을 충족시키고 싶어할까?


“나는 그냥 인간일 뿐이야. 몸뚱이를 갖고 있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필요하고, 입을 옷도 필요하지. 

하지만 나는 눈에 보이지 않아. 알겠어?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이라고. 간단해.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



 

영국 남부의 작은 마을 아이핑의 한 여인숙에 수상한 남자가 나타난다. 매서운 눈보라를 뚫고 장기 투숙을 하겠다며 나타난 그는 특별하고 까다로운 연구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과학자인 듯한 그의 특성을 대변하듯, 굉장히 신경질적이고 이상한 성격을 지닌 듯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정체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에게 낱낱이 드러난다. 몸뚱이를 가지고 있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필요하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는, 투명 인간(The Invisible Man). 그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사실은 바로 그의 존재감 그 자체, 그리고 그의 존재감이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극도로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다름’이라는 개념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그 상태에 대하여 성숙해지지는 못한 듯하다. 당장 올해 우리 앞에서 화두가 되었던 인종의 차이부터 시작해서 종교의 다름, 기호의 다름…  그리고 그 다름의 대상이 다수 앞에서 움츠러들 것만 같은 소수일 때, 소수자는 순식간에 타자가 되어 버리며 차이는 대체로 악의 시발점이 되어버린다. 이 시대의 투명 인간은 아마도, 다수의 집단과는 다른 배제된 소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투명 인간’을 한 집단에서 소외된 고독한 소수로만 해석할 수 있을까?


 그리핀의 고독함에 대한 동정을 배제하고 인간으로서의 그를 바라보면, 우리는 그리핀을 그 성향이 극과 극을 달리는 입체적인 면모의 인간으로 느낄 수 있다. 초반에 아이핑 마을에서 수상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투명 인간이라는 이유로 과잉진압을 당할 때 우리는 ‘다름’에 대한 선입견에 매우 경계하며 책을 읽어 나가지만 단지 그뿐, 그의 행동을 돌아보면 그는 개인적인 사명 아래 죄책감을 묻어가며 고양이를 학대하고, 살고 있던 하숙집에 불을 지르며 아버지의 죽음에 일조했음에도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반사회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행동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투명 인간이라는 그의 특수성이 결코 그의 반사회성과 잔인함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과학자인 그리핀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현세의 기술적 진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과학자 및 기술자들에게 도덕성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보통 사람들보다 현저히 낮은 도덕 의식을 지닌 사람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성과를 냈을 때 인류는 얼마나 큰 파멸을 길을 걷게 될 것인가. 모든 연구와 실험을 무조건적으로 가치 중립적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교훈이다.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투명 인간’이라는 소재 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타임머신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SF소설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 투명인간은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이기에 책의 발간 시점이 비교적 최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투명 인간은 1890년에 만들어진, 매우 고전적인 형태의 투명 인간이다. 19세기의 투명 인간은 인간의 한계와 싸워야 했고, 자기 자신의 욕망과 싸워야 했고, 자신을 괴물처럼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과 싸워야 했다. 사람들에게 영웅적인 모습 대신에 공포를 주려고 했고, 그 공포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했다. 그리고 21세기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투명 인간 보다 더 초인적인 능력일 ‘첨단과학’이 인류의 손에 쥐어진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절대적인 능력은 언제든 모두의 고립과 파멸을 초래할 수 있음을 작가는 간파한 듯하다. 원시적 폭력 성향을 그대로 보유한 인간의 손에 첨단 과학이라는 무기가 주어진 이상, 인간은 늘 욕망과 도덕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역시 그럴 것이니.


투명 인간이라는 자신의 특성을 이용해 개인적 욕구를 채우려 했던 그리핀의 모습, 그리고 그러한 이질적인 존재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보여 준 혐오에 가까운 행동들. 둘 중 어떤 편에 서든, 나와 다른 존재를 대하는 우리 모두의 잔인성을 흥미진진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책으로 ‘투명 인간’을 추천한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투명인간 [The Invisible Man]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영미문학, 2013. 11., 김지은, 이동일, 위키미디어 커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