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대립의 사고에서 벗어나기’
지바 마사야의 『현대사상 입문』

  • 538호
  • 기사입력 2024.04.27
  • 취재 이준표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 조회수 36

“이 책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에너지를 스스로 느끼고, 

그러므로 이 세계에서 고독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예술적으로 전개해 보자고 격려하기 위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이 인생을 더 활력 있게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근대에 학자들은 무엇이든 특정 패턴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다고 믿었다. 철학뿐 아니라,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등 여러 곳에서 이 현상은 나타났다. 우리는 이들을 구조주의자라 불렀고, 구조주의자는 인류 문명 전체에 미치는 패턴, 보편적인 진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정의 내리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들은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열었다.


지바 마사야의 『현대사상 입문』은 철학 입문서로 현대 사상의 대표자로 불리는 데리다, 들뢰즈, 푸코를 중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소개한다. 이 작품은 ‘신서대상 2023’ 대상을 수상하고 아마존재팬 철학 분야 1위에 등극하며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난해하고 복잡하기로 알려진 현대 철학을 이해하기 쉽고 간결히 정리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의 이목을 끌었다. 저자가 말하는 이항대립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자세란 무엇인지 작품 속으로 들어가자.



|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포스트 모던이란 근대 이후를 의미한다. 여기서 근대란 17세기부터 19세기 무렵을 가리키며 시민사회와 진보주의, 과학주의 등이 결합된 시대를 말한다. 민주화와 기계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진보해 가는구나’라고 모두가 믿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사람들은 공통의 이상이 상실된 것이 아닌가, 공통된 것이란 게 정말 있는가에 대해 회의감에 빠졌다. 이 같은 혼란의 시대에 구조주의에서 벗어나 공통된 질서를 탈구축하고 해체하며, 차이와 관계를 살펴보는 사상이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 해체주의


해체주의란 쉽게 말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정형화된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흐름으로 철학에선 전통적 형이상학 철학의 범주 안에 머무르기를 거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서양 철학에서 본질과 현상, 관념과 물질, 불변과 변화 등 둘로 쪼개어 현상을 탐구했다. 데리다는 이것을 이항 대립의 구조라 칭하며 인류는 지금껏 이항 대립의 구조로 세상을 봐왔다고 지적한다. 앞선 개념들을 들여다보면 어떤 한 개념이 주류 또는 우위에 위치해 있으며 그에 반대되는 것들이 비주류 또는 열위를 나타낸다. 니체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이항대립 구조를 부수려 하였고, 이 사상에 영향을 받은 데리다는 해체주의를 들고 왔다.



“어떤 고전적인 철학적 대립에서 우리는 마주 대함의 평화로운 공존이 아니라 어떤 폭력적인 위계질서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두 항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명령하고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립을 탈구축 한다는 것은 우선 어떤 일정한 순간에, 위계질서를 전도시킨다는 것입니다”



| 탈구축


탈구축이란 “기존의 고정화된 사물의 양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형태로 재구축하는 것, 다시 말해 사물을 이항 대립, 두 개념의 대립에 의해서 파악하여 좋고 나쁨을 말하려는 것을 유보하여 새로이 재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항대립을 문제 삼는 이유는 이 경우 어떤 가치관을 배경으로 하느냐에 따라 어느 한쪽이 플러스가 되고 다른 한쪽이 마이너스가 필연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결정할 수 없어서 이를 유보하고 우리는 관계성, 그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한 이원론적 양자택일의 논리 이면에 내재하는 관념, 개념, 사상, 학문을 모두 무너뜨리고 특정한 어떤 결정된 개념을 그것과 결코 동일시할 수 없는 결정 불가능한 흔적으로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탈구축 절차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 우선 이항 대립에서 한쪽을 마이너스로 하는 암묵적 가치관을 의심하고 오히려 마이너스의 편을 드는 다른 논리를 생각한다.

2. 대립하는 항이 상호 의존하며,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는 것도 아니고 승패가 유보된 상태를 그려낸다.

3. 그때 플러스도 있고 마이너스도 있는, 이항대립의 ‘결정 불가능성’을 담당하는 제3의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

(데리다는 예로 파르마콘 개념을 소개하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약’이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을 차용해 탈구축에도 이러한 양의성이 함의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데리다는 사회에서 질서를 모두 없애자는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질서를 맹목적으로 강화하는 움직임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질서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는 것, 어떤 질서가 사람들에게 무의식 속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면 그 질서를 잠깐 드러내어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데리다가 얘기한 탈구축이다. 질서를 만드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질서에서 벗어나는 사상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불러온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게 될 때 우리 사회는 언제나 위험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 어째서 현대 사상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바로 ‘헤엄치게 두는 사회의 여유’이다. 우리는 경직된 질서 속에서만 살 수 없다. 한나 아렌트가 경고한 경직된 사고로 인한 무사유의 위험성, 이항 대립으로만 판단하는 사고와 질서가 얼마나 무서운지 역사를 통해 배웠다.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같은 역사를 토대로 우리에게 관계에 대하여, 차이에 집중하는 사고에 대하여 계속해서 파고들게 만든다.


우리가 현대사상을 배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계속해서 편리한 것을 추구하고 이항 대립적 사고로 유도하지만, 현실의 어려움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러한 사고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질서로부터의 일탈이라고 하면 폭주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미지를 조금 바꿔 주었으면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타자를 환영하며 맞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밖에도 데리다, 들뢰즈, 푸코가 각각 얘기하는 ‘차이의 철학’의 의미와 프로이트, 라캉 그리고 마르크스의 사상도 책에 담아냈다. 마지막 장에는 ‘현대 사상의 방향’과 ‘현대 철학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관한 방법’도 소개하고 있으니 책을 직접 만나보기를 권한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전보다 다른 깊이로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이 한권의 책을 추천한다.



“우리는 타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타자에게 주도권이 있고 그것에 휘둘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게 싫은 것 같기도 하고, 바로 그것에 즐거움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중략) 이렇듯 능동성과 수동성이 서로를 밀치고 뒤엉키면서 전개되는 회색 지대가 있고, 바로 거기에 삶의 리얼리티가 있습니다.”



(위 기사에서는 책의 내용을 파편화하여 담았기에 철학적 논리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