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에 공부가 꼭 필요할까? (1)

  • 538호
  • 기사입력 2024.04.30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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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진성 바이오메카트로닉스학과 교수


성균웹진 536호에 글을 올리며 대학생활에 멘토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마무리하였다. 대학생활을 다시금 돌아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다듬는 과정은 개인적으로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웹진 기고에 기회가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짧게 고민했으나,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대학생들과 조금이라도 나이 차이가 덜 나는 시기에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더 풀어보고자 한다. 앞으로 나눌 이야기 들은 당연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정답은 당연히 아니고 조언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할지 모른다. 그래도 학생 여러분들에게 무언가 생각할 단초가 된다면 충분히 그 역할에 만족한다.


대학생활을 위하여 필요한 것 시리즈의 두번째 주제는 공부다. 공부라는 주제만 듣는다면 먼저 드는 생각은 거부감 일지도 모른다. 주제만 들었는데, 지루해지고, 지겹고, 벌써부터 재미가 없어져 뒤로 가기를 눌러버릴지 모른다. 벌써 망쳐버린 중간고사 때문에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더군다나, 우리 성균관대 학생들은 어린시절부터 나름대로 공부 꽤나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국내에서 알아주는 영재들이다. 실제로 내가 수업시간에 가르치며 지켜본 우리 학과 학생들은 바이오, 전자, 기계, 컴퓨터 등 하나도 어려운 다양한 전공을 탁월하게 소화하는 진정한 올 라운더(All Rounder) 플레이어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성대학생들에게 교수님이 대학시절 공부하라고 한다면 이만한 잔소리가 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한 교수의 공부여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0대에 대학교수에 임용이 되어서 30대에 성균관대 교수가 된 나름 치열한 삶을 산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 성균관대 교수님들의 수준이 이정도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길 바란다.


대다수 공부 좀 해봤다는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중고등학교 때는 남들 하듯이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지방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 다른 큰 도시로 학교를 다니는 여정이 쉽지는 않았다. 내 기억엔 중학교에서 40명의 학생 정도만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로 입학을 하였다. 그때 당시 이 지역을 벗어나서 꿈을 펼치려면 공부 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비평준화 고등학교가 있던 시기라, 나름 지역의 명문 고등학교들이 존재할 때였다.


고등학생 시절,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부모님 역시 공부 잘하는 아들이 스스로 잘 할거라 생각하셨다. 가정형편 상 과외는 힘들고, 학원과 야간자율학습을 적당히 섞어가며 부지런히 공부하였다.  처음 고등학교 입학할 당시 104등(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이었던 성적은 고2에 올라와서 이과 중 전교 5등까지 올라갔었다. 당시 우리 고등학교에서 전교 10등 안에 들면 전국에 대학을 골라갈 수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주구장창 내신만 준비해봤지, 누구 하나 수능공부를 미리미리 해야 한다고 알려 준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고3이 되면 수능점수가 탁 하고 나올리가 없지 않겠는가? 같은 내신 등급의 친구들보다도 점수가 20~30점 안 나왔었다. 열심히는 하는데 점수가 쉽게 오르지 않아서 여러가지 힘들었던 시간이었다.(그때 나는 내가 내신파 임을 확신했다.) 그런 나에게 기회가 생긴 것은 새로운 대입 전형이었다. 그 당시에도 흔하지 않던 수시모집 1학기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보기 힘든 수시모집 1학기 전형은 고등학교 내신점수로만 서류 심사를 진행하고 1차 합격자를 대상으로 논술과 구술시험을 보아 대학에 입학하는 전형이다. 수능 점수가 최소 기준으로 포함되는 수시모집 2학기 전형과 다르게 수능점수 필요 없이 대학 입학이 결정된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데 수능 D-72일에 대학 입학이 확정되었다. 그렇게 명문 사학인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당시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할 때였다. 그래서 수시 원서를 쓸 때, 내가 관심 있던 기계공학과는 상대적으로 다른 전공에 비해 경쟁률이 낮았고, 나름 논술과 구술 준비를 열심히 준비하여 합격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진행되던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으로 대학에 입학한 성적순으로 제공된 ‘이공계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이공계 장학금은 3.5점(4.5점 만점) 이상 학점을 맞을 시 전액 장학금을 받는 것이었다. 집안 형편이 여유롭지 않던 나는 어떻게 해서 든 학점을 잘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정말 1학년 때는 악착같이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 중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나누고자 한다.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하면, 나는 고등학교 때 수학 공포증이 있었다. 5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25문제의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큰 압박감이었다. 다른 과목과는 다르게 수학은 수능 모의고사 점수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교에서의 수학은 고등학교와 전혀 달랐다. 1시간 30분 동안 7문제를 푸는 방식은 나에게 정말 신선했고, 수학도 한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1학년 초기에는 물리, 화학, 수학(미적분학) 등 고등학교 때 배웠던 내용이 큰 영향을 주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하는데, 술 먹고 미팅과 소개팅 하고 수업시간에 자거나 안 들어오는 동기들이 시험 때 만 들어와도 성적이 잘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내 한계를 많이 생각했다. '내가 정말 이것밖에 안되나?', '역시 명문대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는구나...' 하지만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필사적인 상황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1학기를 마쳤다. 1학기 때 성적장학금을 받게 되자 동기들도 조금 나를 다르게 보던 기억이 난다.


1학년 2학기가 되자 서서히 대학에서만 배우는 내용이 많아졌다. 이때부터 수업을 충실히 듣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나눠지게 되었다. 1학년은 대학생활에 로망이라고 학사경고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동기들과 취업과 자신의 진로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고등학교 때의 공부하던 관성 때문에 수업에 꾸준히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동기들 이렇게 나눠졌다. 나의 경우는 멘토 편에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대학에 입학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왜 공부를 하는 가?’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1학년 때 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1학년 시기가 인생에 대한 큰 전환점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1학년이 끝나는 무렵, 원하던 성적을 받지 못한 많은 남자 동기들이 군 입대를 하게 된다.


2학년 시절부터는 다음 글에서 이야기해 보자.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