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국립대학교 법학과 교환 국비 장학생 ①

  • 510호
  • 기사입력 2023.02.27
  • 편집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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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서현 (글로벌리더학부 19)


◈ 싱가포르를 선택한 이유


교환학생은 어렸을 적부터 나의 로망이었다. 우리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찾았다. 선배들이 글로벌리더학부에 재학 중이고 법 과목 수강에 관심 있다면 CAMPUS Asia 프로그램을 통해 국비 장학생 자격으로 법학 교환학생 가는 것을 추천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모든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전면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오랫동안 희망했던 교환학생의 꿈을 반쯤 접었다. 하지만 2021년 2학기부터 다시 각국의 교환학생 프로그램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교환학생을 준비하며 2022년 2학기부터 싱가포르 국립대 법학과가 CAMPUS Asia 프로그램에 합류해 파견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싱가포르는 이중언어정책을 시행해 중국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다. 싱가포르에서 교환학생을 한다면 중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실력도 향상되리라 기대했다. 싱가포르가 최근 동아시아의 비즈니스 중심지이자 국제 중재 허브로 급부상하며 국내의 대형 로펌들이 싱가포르에 대거 진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싱가포르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아시아 1위이자 세계적 명문인 NUS 법학과에서 학부생으로 법학 수업을 수강한다면 법조인을 꿈꾸는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했다.  


◈ 생애 첫 외국 생활 헤쳐 나가기


해외여행을 다녀본 경험은 있지만 외국에서 오랫동안 혼자 체류한 적은 없었다. 타지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막연한 걱정이 들었다. 코로나에 의한 규제가 풀린 직후인 2022년 2학기에 약 2,500명 정도의 교환학생이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 왔다. 인원이 많자 나를 포함한 대다수 학생이 기숙사를 배정받지 못했고 주거 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싱가포르 국립대학 국제처, 법학부, 캠퍼스 아시아 담당처 등 여러 군데 문의를 했음에도 기숙사 추가합격이 되지 않았다. 약 2주간은 여러 사이트를 전전하며 방을 찾았다. 4개월 단기 임대를 받아주는 곳이 흔치 않아 중간에 교환학생을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운 좋게도 나름 적당한 값의 좋은 방을 찾았다. 집을 실제로 보지도 못한 채 온라인으로 단기 임대차계약서를 사인하고 보증금을 납입했다. 싱가포르 법을 찾아보며 임차인을 보호하는 조항 등이 계약서에 삽입되어 있는지도 따져봤다. 하지만 집주인이 기분 나빠 갑자기 집 계약을 안 할까 봐 정당한 권리를 주장해 보지도 못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조건 모두에 동의하는 등 떠나기 직전까지도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같이 사는 집주인은 매우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중국계 싱가포르 노부부였다. 중국어를 꾸준히 배우는 중이라고 하니 매우 좋아했다. 중국어로 스몰토크를 나누기도 하고 중국 요리도 종종 해주는 등 거주하는 기간 동안 부모님처럼 알뜰히 챙겨주셨다. 무엇보다 옆방에 사는 필리핀 친구 렉시를 만난 것은 교환학생 생활 전체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 렉시는 나와 같은 학기에 파견 온 싱가포르 국립대 경제학과 교환학생이었다. 이전부터 한국 문화에 많은 관심이 있어서 처음에 k-pop이나 k-drama, 한국 음식 등에 대해서 얘기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조금 더 친해진 이후에는 삶의 태도 및 가치관 등의 깊은 얘기들도 했다. 전혀 다른 국가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너무 얘기가 잘 통해서 신기했다. 이런 마음 맞는 친구가 하우스 메이트여서 든든했다.


그 시절 ‘거주할 집을 찾으면서 집 찾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낯선 곳에서 혼자 어떻게 헤쳐 나갈까’ 하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현시점에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러나 집을 떠나 다른 국가에서 거주하며 낯선 환경에서 혼자 난관을 헤쳐 나가는 법, 다른 이들과 서로 배려하면서 생활하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들 좋은 기회였다.


▲ (왼쪽) 친구 렉시와 함께한 여행 . (오른쪽 ) 집주인 아주머니가 종종 해주시던 중국식 요리



◈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서의 공부


싱가포르 국립대 법학부에 파견되면 일본, 중국과는 달리 CAMPUS Asia 프로그램의 필수 수강 수업 등 정해진 커리큘럼이 없다. 자유롭게 수강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싱가포르 국립대 법학부는 ‘국제항공법, 국제우주법, 국제해양법, 국제환경법, 국제사법, 국제 형사 절차법’ 등 다양한 국제법 수업들이 열리곤 한다. 한국에서는 학부생 신분으로 수강이 불가한 다양한 특별법 수업이 CAMPUS Asia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가능하다. 이것이 이 프로그램의 큰 메리트 중 하나다.


수강한 법학 과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은 ‘International Commercial Arbitration(국제상사중재법)’ 수업이다. 지난 해 법무부 주최 법령경연대회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중 주택임대차 분쟁조정 제도와 관련된 개정안을 고민해보며 ADR(대체적 분쟁 해결제도)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ADR과 관련된 수업을 듣고자 국제상사중재법 수업을 수강했다. 싱가포르는 지리적 특성상 금융거래 및 중개무역이 활발해 국제상사중재가 매우 발달한 국가다. 국제상사중재법은 경쟁률이 매우 높은 인기 있는 수업이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첫 수업에 들어갔지만,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수업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또래 대학생 중에서 영어를 꽤 잘한다고 자부해 왔는데 싱가포르 특유 억양이 녹아있는 싱글리시 발음과 어려운 법률 영어, 일반적 소송 법리와는 상이한 국제상사중재 법리, 이들 세 가지의 조합으로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싱가포르 국립대는 3, 4학년 학부생과 석사과정 수업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이때 같이 수업을 듣는 학우 중 반 정도는 스위스 중국 일본 등 해외 각국 변호사 출신의 석사 과정 학생들이었다. 싱가포르 국제상사중재 센터(SIAC)의 중재위원들도 있었다. 수업을 잘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과 나 자신을 계속 비교하며 위축되었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매 순간 ‘CAMPUS Asia 프로그램’ 지원서를 작성했던 때의 간절하고도 호기롭던 마음가짐을 잊지 말자고 계속 되새기며 수업 내용을 모두 녹음해서 수업 이후 다시 들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은 수업 이후 교수님께 따로 질문을 드렸다. 영어 원문 교과서를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은 성균관대학교 학술정보관을 통해 국제상사중재법 전자책 및 여러 논문을 빌려 읽어보며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했다.


이 수업의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중간고사가 조별 모의재판 및 이에 대한 개인 보고서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이 역시 한국의 학부 법학 수업 시간에는 있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는 중재인을 배정받게 되었다. 중재인(arbitrator)은 모의재판 직전까지 모의재판 문제를 제외하고는 각 측이 작성한 서면을 읽어볼 수 없다. 양측의 변론이 끝난 즉시 arbitrator’s decision을 작성해서 발표해야 해서 다시 한번 심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다. 그럼에도 모의재판 케이스의 쟁점으로 주어진  “1) 해당 중재가 제기된 ICC ASIA에 관할권이 존재하는가?  2) 동 사안의 A 중재인이 공정성 및 투명성을 갖추었는가?  3)동 사안에서 제기된 임시적 보전 조치는 타당한가? “에 대해, 문제에서 제기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양측에서 어떤 논리를 펼칠 것인지 모든 가능한 주장과 근거 및 관련 케이스들을 모아 비교 대조해보며 리서치했다. 이를 바탕으로 모의재판 당일 떨지 않고 논리적으로 나의 arbitrator’s decision을 잘 발표할 수 있었다.


국제상사중재법 수업을 통해 학문적으로도 성장했다. 정신적으로도 성장할 계기가 된 것 같다. 수강 신청 이전에는 학교 커뮤니티를 통해 해당 수업에 대한 이전 수강생들의 시험 팁, 교수님의 수업 방식 등의 사전 정보로 수강 신청을 했다. 시험이 다가오면 선배들의 자료와 족보 등을 참조해 시험을 준비했다. 모든 동기들도 그랬다. 그런 것을 당시에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나는 매우 타성적으로 공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어느 것도 없어서 모든 것을 스스로 이해하고 깨우쳐야 했다. 법조인에게 주어진 문제를 창의적, 자율적으로 사고해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수업을 계기로 이런 점이 조금이나마 개발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 제출했던 arbitrator's decision 보고서의 표지



교양수업으로 중국어를 수강하면서 중국어 어학 실력을 향상하고자 한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제2외국어가 중국어였고 대학교에 와서도 이를 꾸준히 공부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이중언어정책을 사용해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가 생활 전반에 녹아있는 국가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에 파견된다면 반드시 교양수업으로 중국어를 수강해 스피킹 및 리스닝 실력을 향상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Chinese5를 신청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싱가포르 국립대학은 법학 캠퍼스(Butit Kimah Campus)와 메인 캠퍼스가 나뉘어 있다는 것. 전공 법학 수업들이 끝난 뒤 바로 버스를 타고 중국어 수업을 들으러 약 30분 거리의 메인 캠퍼스에 가야 했다. 체력 소모가 컸음에도 싱가포르에서 꾸준히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을 기를 수 있었다. 한국의 중국어 교육법은 주로 독해와 문법 위주여서 독해 실력에 비해 말하기, 듣기 실력이 월등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중국어로 문장을 구사하려면 위축되기 일쑤였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인구 구성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싱가포르에서는 중국어가 필수적이다. 마트에서 계산하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중국어 사용 빈도를 점차 늘려가기 시작했다. 중국인 교환학생 친구들과도 영어가 아닌 중국어로 대화하려고 노력하면서 언어적 자신감을 많이 기를 수 있었다. 4개월의 짧은 시간이라 비약적 발전까지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파견 이후 보고서를 작성하는 현재 HSK 6급을 준비하고 있는데 싱가포르에서의 실력 향상이 체감되고 있다.


교환학생 시절 얻을 수 있었던 가장 값진 경험은 내가 정신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성적 때문에 일희일비하며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만 추구하고 안정적 루트만 고수했다. 교환학생 시절에는 나의 학문적 관심에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깊이 있게 고찰하고 사색했다. 다양한 난관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돌파해가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나 자신을 관찰할 수 있었다.


-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법학과 교환 국비 장학생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