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되는 전제 조건 : 충효

  • 520호
  • 기사입력 2023.08.03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1402

글 :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황제가 된 이후에 바란 것은 무엇일까? 중국역사를 보면 그것은 바로 불사(不死)의 신선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진시황(秦始皇)이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고자 했고, 한무제(漢武帝)가 도교(道敎)에 푹 빠졌던 고사는 그것을 대표한다. 도교를 숭상한 고려의 예종(睿宗)과 관련이 있으면서 북송대를 망하게 한 휘종(徽宗)은 스스로 도사[교주도군황제(敎主道君皇帝)]임을 자임하기도 했는데, 중국 황제들에게 보이는 도교에 대한 이같은 혹애 현상은 한국 역사의 왕들과 차이가 나는 점이기도 하다.


‘오래 살 수 있고 신선이 될 수 있다[장생성선(長生成仙)]’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동진(東晉)의 갈홍(葛洪)은 자신의 저서인 『포박자(抱朴子)』에서 신선의 존재를 인정하는데, 이런 사유는 ‘인간의 후천적인 노력이나 배움을 통해 신선이 가능한지[신선가학론(神仙可學論)]’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신선이 되는 방법으로는 도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먹을 것[복약(服藥)], 곡물을 먹지 않을 것[벽곡(辟穀)], 일종의 기공 체조[도인(導引)], 호흡술[행기(行氣)], 남녀교접술[방중술(房中術)]’ 등을 거론한다. 도교에서는 이같은 점 말고도 신선이 되는 전제조건으로 충효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점은 중국사상사에서의 유교와 도교의 접합점을 보여준다.



2. 도교의 신선되기 전제조건 : 충효


도교 신선을 거론한 갈홍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신선전(神仙傳)』, 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 북송대 지어진 『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는 중국역사상 신선이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전설상의 선인이면서 거의 800년을 살았다는 팽조(彭祖), 오두미도(五斗米道)의 창시자인 장도릉(張道陵), 대표적인 여선(女仙)이면서 절세미인인 서왕모(西王母) 등을 비롯하여 신분이나 남녀노소 구별 없이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들은 대부분 신비적이면서 탈속적, 은일(隱逸)적 삶을 산 인물이란 점에서 유가의 충효 관념과 상관없는 인물들로 보인다. 하지만 도교 전적에서도 신선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충효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교의 충효관은 『효경』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유교를 지배이데올로기로 삼은 조선조가 「삼강오륜행실도(三綱五倫行實圖)」와 같은 텍스트를 통해 효와 충을 강조한 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 삼강오륜을 강조하는 유교와 상대적으로 ‘세속에서의 인간관계망에서 요구되는 바람직한 행동거지를 잊어버리고 삶을 살아가면서 맞닥트리는 다양한 사물과의 관계를 끊는 것[절세유물(絶世遺物)]’을 강조하는 도교에는 충효관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도교의 여러 경전에서도 충효관을 강조하고, 유가(儒家)가 흔히 멸인륜(滅人倫)·무군(無君)·무충(無忠)·무효(無孝)하다는 차원에서 비판받는 불교에서도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을 통해 부모님에 대한 은혜 및 효심을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에서 충효 관념은 단순 유교에만 그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도교는 송대 이전부터 충효를 강조하지만 불교는 송대에 와서 주로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불교의 이같은 점은 송대에 삼강오륜을 강조한 유교가 지배이데올로기로 작동하게 되자 타협점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불교의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도교는 송대 이전부터 충효관을 통한 유교와의 접합점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도교의 신선되는 전제조건과 관련하여 충효를 강조한 것을 알아보자.


신선은 유가의 성인(聖人)과 다른 이상적인 인간상의 하나를 제시한 것이다. 이같은 신선이 되는 조건으로 충효를 먼저 강조하는 것은 도교도 인간관계망을 떠나 존재하는 사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송원(宋元) 이후 유석도(儒·釋[佛]·道) 삼가(三家)에서는 ‘효도를 권하는 책[권효서(勸孝書)]’이 등장한다. 도교의 효도관은 도교 종파에 따라 다른 점을 보인다. 효 그 자체를 중시하는 경우도 있고 효를 충과 함께 중시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도교를 ‘절세유물’로 규정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충과 효를 강조하는 ‘정명충효도(淨明忠孝道)’의 효도관 및 충효관은 유가의 충효관의 영향 관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도교의 효도관과 충효관을 보여준다. 특히 도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태평경(太平經)』과 『포박자』(內篇) 「대속(對俗)」 등에서는 이미 효에 관한 언급이 출현하는데, 그 함의는 전통 유가 윤리와 일치하는 것이 많다.


『태평경』「위부모불역결(爲父母不易訣)」에서는 “자식은 마땅히 효도하고 부모의 가르침을 받들면서 골육지절(骨肉肢節)을 완전하게 잘 보존하라”고 한다. 『효경』에서 말하는 부모에게서 부여받은 신체발부(身體髮膚)를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사유와 유사한 점이 있다. 『문창효경(文昌孝經)』「변효장(辨孝章)」에서는 “모든 행동에 오직 효가 근원이 된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始知百行, 惟孝爲源.]”라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점은 유가 차원에서 ‘효가 모든 행동의 근본’이란 사유와 유사하다. 『포박자』(내편) 「대속」에서는 “신선 되기를 구하는 자는 마땅히 충효(忠孝), 화순(和顺), 인신(仁信)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덕행이 닦이지 않고서 다만 방술을 구하면 모두 장생을 얻을 수 없다”라는 것이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무리 방술(方術)을 하고, 선약(仙藥)을 먹어도 덕행이 없으면, 장생불사의 도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충효, 화순, 인신’을 강조하는 것은 유가와 동일하다. 부모에게 효도를 비롯하여 자신의 덕행을 닦는 것을 통해 성선(成仙)까지 가능하다는 것은 일석이조에 해당하는 매우 매력적인 사유라고 본다.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에서는 충효와 우애를 통해 자기를 바로 하고 다른 사람을 교화시킬 것[忠孝友悌, 正己化人]을 말하기도 한다. 『태상대도옥청경(太上大道玉清經)』「본기품(本起品)」에서는 천존(天尊)이 종신토록 받들면서 ‘경계해야 할 것으로 열 가지[十戒]’를 말한다. 맨 첫 번째 경계해야 할 것으로 부모와 사장(師長)에게 위려(違戾)하지 않을 것을 강조하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군주에 반역하고 가국(家國)을 모해(謀害)하지 말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국왕이 국가를 운영하는데 차지하는 위상의 중요성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부모와 사장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가고, 만겁(萬劫)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비록 사람 가운데에서 살더라도 어려서 고아가 되고, 타인의 능자(凌刺)를 받아 항상 비천하게 살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충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제 삶에서 받는 상황에 적용하여 말하고 있다. 도교는 유가와 달리 부모 이외에 사장에게까지 효도할 것을 요구하고 아울러 효도를 하지 않으면 당할 수 있는 현실적 삶에 대한 고난과 불이익을 강조하는 점은 차이가 있다.


이상과 같은 도교의 충효관을 보다 자세히 규명하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도교가 장수(長壽)하면서 성선(成仙)하는 것을 효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짓는데, 이런 점을 유가의 효도관을 개조하고 제고시킨 점이 있다. 다른 하나는 도교의 효도관에는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사상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효행을 하면 천지신명과 감응한다는 도리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불효하고 불충한 경우 하늘로부터 재앙을 받는다는 사유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친소(親疏)의 구별을 하지 않고 부모부터 천지 만물에 이르기까지 효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점은 효가 인간의 단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에까지 미친다는 이른바 생태학적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3. 나오는 말


중국은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로 대가족제를 통한 농경적 삶을 기본으로 하면서 종법적(宗法的)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해왔다. 이런 정황에서 한 집안은 모든 사회 더 나아가 국가의 축소판으로서 존재하였다. 이런 정황에서 유가는 가정 및 사회, 국가의 안정과 질서 및 화해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효를 강조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집안과 나라가 일체라는 이른바 가국일체(家國一體) 혹은 가국동구(家國同構)라는 사유에서 출발하여 효와 충을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 인간이라면 마땅히 실천해야 할 윤리적 덕목 가운데 도(道)라는 글자를 사용하여 그 행동거지 및 마음가짐을 규정한 대표적인 것은 바로 효다. 즉 ‘효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효가 갖는 의미를 특화하고 있다. 한대 이후 유학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한 이후 효 관념은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덕목으로서 황제에서부터 한 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해당하였다. 불효자로 낙인찍히면 사회적 운신 폭이 매우 좁아지는 것은 과거나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이런 점에서 중국사상사에서 효와 그 효를 충으로 확장시킨 이념이 갖는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데, 도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