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로 읽는 공직자상

  • 524호
  • 기사입력 2023.10.04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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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퇴계 이황(李滉)이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를 올리고, 율곡 이이(李珥)가 「만언봉사(萬言封事)」를 통해 제왕의 올바른 정치 및 덕목과 몸가짐에 대해 글을 쓴 바가 있듯이 동양역사에는 많은 인물들이 올바른 군주관을 피력한 바가 있다. 형식과 내용은 다르지만 회화 작품을 통해 당시 국가시스템의 문제, 위정자의 부조리 등을 거론한 대표적인 인물은 명대 청등(靑藤)이란 호를 쓰면서 광기어린 대사의화풍(大寫意畵風)을 펼친 명대 서위(徐渭)와 이같은 서위를 존중하고 자신을 ‘청등주구(靑藤走狗)’라고 하면서 겸양을 보인 청대 정섭(鄭燮. 호는 板橋)이다.


2. 애민(愛民)과 공직자의 자세


정섭은 글재주 능력이 있었지만 관료로서는 7품 관직에 그친다. 정섭이 산동 유현(灘縣)을 다스릴 때 큰 가뭄이 들어 농민들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는데 조정에서는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는다. 이에 정섭은 상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관청의 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구재미(救災米)를 나누어주어 기아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지만 조정의 허가 없이 창고를 열어 곡식을 탕진했다는 죄목을 얻어 파직된다. 이런 정황을 「귀향을 알리며 대를 그려 유현의 신사·백성들과 이별함(予告歸里, 畵竹別灘縣紳士民)」[도판 1]이란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린다.


                                             烏紗擲去不爲官 : 오사모를 던지니 관리가 아니다

                                             橐橐蕭蕭兩袖寒 : 뚜벅뚜벅 돌아오는데 쓸쓸한 바람에 ‘두 소매가 차네[兩袖寒]’.

                                             寫取一枝淸瘦竹 : 맑은 ‘야윈 대나무[瘦竹]’ 가지 하나 얻어 글을 짓고선,

                                             秋風江上作漁竿 : 가을바람 이는 강가에서 드리울 낚싯대 만드네.



[도판 1 ]話題 : “烏紗擲去不爲官,囊橐蕭蕭兩袖寒. 寫取一枝清瘦竹,秋風江上作漁竿.”


고향에 돌아가는 길에는 ‘한 마리는 자신이 타고, 한 마리는 서적을 싣고, 한 마리는 시동을 태운’ 3마리의 당나귀만이 남았을 정도로 청렴한 관료로서 재직하였다. 빈털터리를 의미하는 ‘두 소매가 차다[兩袖寒]’는 시어는 이런 점을 상징한다. 도연명(陶淵明)이 팽성(彭城)의 관료 생활에 사표를 내고 집에 돌아올 때[歸去來] 거문고 이외 별다른 물건이 없어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린다[舟遙遙以輕颺]’라는 정황과 유사하다. 정섭은 어느날 유현 관아에 있을 때 불어오는 바람에 이는 댓잎 소리를 「유현 관아에서 대를 그려 대중승 포괄 어른께 드림(濰縣署中畵竹呈年伯包大中丞括)」[도판 2]이란 시에서는 백성들의 고달픈 삶의 신음으로 듣는다.


                                             衙齋臥聽蕭蕭竹 : 관아 서재에서 누워 듣는 쓸쓸한 댓잎 소리

                                             疑是民間疾苦聲 : 백성들 질고에 시달리는 소리일런가

                                             些少吾曹州具吏 : 우리는 하찮은 주현의 벼슬아치지만

                                             一枝一葉從關情 : 가지마다 잎새마다 모두 백성들의 하소연일세



[도판 2]話題 : “衙齋臥聽蕭蕭竹, 疑是民間疾苦聲. 些少吾曹州具吏, 一枝一葉從關情.”



이 그림 왼편에 그려진 댓잎이 하나 없고 생존이 문제가 되는 앙상한 대나무는 고통받는 백성을 상징한다. 위정자는 백성에게 군림해서는 안된다. 정섭은 강력한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고위 관직에 있을수록 더욱 유약겸하(柔弱謙下)의 자세로 백성들에게 임해야 한다고 여겼다.


옛사람들이 주석을 그리려면 모두 한가운데에 정면으로 그렸는데, 나는 꼭 그래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라의 주석이라면 공고보부(公孤保傅)가 최고 지위의 신하라도 정중앙 따뜻한 해가 비치는 자리를 차지한다는 이치가 없다는 것과 같다. 오늘 특별히 옆으로 비켜 서 있는 자세로 그린 후 이를 시로 엮고자 한다.[도판 3]


                                             一卷柱石欲擎天 : 하늘을 떠받치고 선 주석 한 기둥

                                             體自尊崇勢自偏 : 모양은 훌륭한데 자세가 기울었네

                                             却似武鄉侯氣象 : 무향후[諸葛亮]같은 기상으로

                                             側身謹慎幾多年 : 몸 낮춰 근신한 지 몇 해이던가.



[도판 3] 〈柱石圖〉


공고보부의 유약겸하(柔弱謙下)의 자세 및 기상을 높이 평가한 이 시는 고위 공직자일수록 더욱 자신을 낮추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에 속한다.


3. 만물평등론


정섭은 난초[蘭]와 대나무[竹]에 가시나무[荊棘]를 함께 그리곤 하였다. 이 경우 군자로 상징되는 난과 대나무에 비해 가시나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가시나무에 대한 위상이 달라지게 된다. 소식의 경우 가시나무를 소인으로 규정하였지만 정섭은 ‘나라의 용맹한 전사들이나 대신들처럼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라고 여겨 완전히 다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동파[蘇軾]는 난을 그릴 때 가시를 곁들어 그림으로써 군자는 소인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함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가시를 소인으로만 간주하지 않으며 나라의 용맹한 전사들이나 대신들처럼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라 생각한다. 깊은 산중의 난은 세속의 시끄러운 근심 따위는 없다. 그러나 쥐들은 그것을 먹어 치우려 하고, 사슴은 이로 물어뜯으려 하고, 돼지는 뒤집어엎으려 한다. 또 나무꾼들은 그것을 캐거나 꺾으려고까지 한다. 만일 난을 보호해주려는 가시가 있다면 난을 해치는 것들이 멀어지게 마련이다.


난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가시라고 여기는 정섭의 가시에 대한 이같은 사유 전환에는 ‘만물은 모두 함께해야 하는 동포’라는 철학이 깔려 있다.


                                             莫漫鋤荊棘 : 가시나무를 함부로 뽑아내지 말라

                                             由他與竹高 : 대나무와 더불어 높이 자라게 하라

                                             西銘原有說 : 「서명」에 원래 이런 말 있지 않은가

                                             萬物總同胞 : 만물은 모두 다 동포라고.


북송대 유학자 장재(張載)는 「서명(西銘)」에서 “백성은 나와 더불어 같은 동포이고 만물도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民吾同胞, 物吾與也.]”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흔히 유가 생태윤리를 말할 때 항상 거론하는 말인데, 정섭은 이같은 사유를 난과 가시에 적용하여 ‘가시[하찮다고 여기는 백성]’도 ‘대나무[군자]’와 동등하게 자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여송상인을 위해 그린 가시나무와 난꽃(爲侶松上人畵荊棘蘭花)」[도판 4]이란 작품에서는 불교의 불법과 관련하여 가시와 난에 대한 인식 전환을 꾀하기도 한다.


                                             不容荊棘不成蘭 : 가시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난이 될 수 없는 법

                                             外道天魔冷眼看 : 다른 길의 마귀들이 차갑게 바라보네

                                             門徑有芳還有穢 : 법문 이르는 길에 향기[蘭]와 악취[荊棘] 두루 있어야만

                                             始知佛法浩漫漫 : 비로소 불법의 드넓음을 알게 된다네



[도판 4]話題 : “不容荊棘不成蘭,外道天魔冷眼看。門徑有芳還有穢,始知佛法浩漫漫.”


정섭이 사물에 대한 무차별적 인식을 불법이 갖는 포용성에 적용하면서 세상 삶이란 긍정적인 차원의 향기[蘭]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악취[荊棘]도 수용해야 한다는 사유를 전개한 것은 이전에 없는 독창적인 세계 인식이다.


4. 나오는 말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때 ‘두 소매가 차네[兩袖寒]’라는 시어가 상징하듯 정섭은 관료로 재직하는 동안 탐욕을 부린 적이 없었다. 정섭은 ‘사민(四民:士農工商)’ 중에 농민을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강조하면서 기존에 사(士)를 가장 높이는 사유를 거부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농민들이 국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것을 요구한다. 공직자로서, 위정자로서 갖추어야 할 농민에 대한 존중 태도를 강조한 이런 사유는 정섭 애민 정신의 핵심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