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루소’ 황종희(黃宗羲)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

  • 529호
  • 기사입력 2023.12.12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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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민이 중요하지, 군주는 별것이 아니다.(民爲貴, 君爲輕.)”

“임금이 신하 보기를 흙이나 지푸라기처럼 여긴다면, 신하는 임금 보기를 원수처럼 여긴다(君之視臣如土芥, 視君如寇讐).”


위 말은 역대 제왕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로서, 맹자(孟子)가 주장하는 애민정치 사상의 핵심이다. 고아이면서 천민 출신이었지만 명을 건국한 주원장(朱元璋)은 이런 맹자를 싫어해 맹자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폐지하고, 공묘(孔廟) 안의 맹자 위패를 철거한다. 과거 과목에서 『맹자』를 제외하고, 인정을 말하는 대목, 왕도를 말하는 대목, 혁명을 말하는 대목을 삭제한 『맹자절문(孟子節文)』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주원장의 행위는 이후 무능한 황제들의 통치에 영향을 주고 결국 명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주원장(朱元璋) 어진(御眞) : 주원장 초상화[어진]는 왼쪽처럼 후덕하고 위엄있게 그려진 것과 오른쪽같이 턱과 입이 길게 나온 데다가 곰보 자국 투성이인 못생긴 두가지가 있다. 기록에는 오른쪽처럼 곰보가 많은 얼굴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주원장이 『맹자』를 읽다가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치며 “이 늙은이가 지금 살아 있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당장 이 자의 신주를 사당에서 내치고 책을 불태워라.”라고 명했다고 한다.


2. 『명이대방록』의 중의(重義)적 의미


『예기(禮記)』 「예운(禮運)」에서는 ‘천하는 모든 이의 것이다[天下爲公]’라는 것과 ‘천하는 어느 한 집안의 것이다[天下爲家]’라는 것을 구분하고 ‘천하위공’의 이상 세계를 강조한다. 하지만 역사는 ‘천하위가’로 전개되었고, 이런 점에서 ‘천하위가’의 대표자격인 군주[제왕]의 역량에 따라 제국의 운명이 결정되곤 하였다.


하나의 제국이 멸망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이런 점과 관련해 왜 명나라가 망했는가 하는 점을 심각하게 고민한 사상가가 있었다. 바로 명말 유학자로서 『명이대방론(明夷待訪錄)』을 지은 황종희(黃宗羲, 1610~1695)다. 중국 역사를 보면 제국의 멸망한 원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큰 것은 백성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닌 세습된 황제의 무능과 제대로 통제받지 못하는 황제의 전횡이다. 이런 점을 황종희는 『명이대방록』의 「원군(原君)」을 통해 분석하면서 재상(宰相)의 역할을 강조한다. 하지만 재상이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물이라도 황제가 수용하지 못하면 그만이란 문제점이 있다.


『명이대방론(明夷待訪錄)』에서 ‘밝음이 손상된다’는 ‘명이’는 중의(重義)적 의미가 있다. ‘명이’는 일단 『주역』의 「(地火)明夷卦」를 의미한다. ‘불이 땅 아래’에 있어 그 불의 ‘밝음[明]’이 ‘손상된다[夷]’는 의미다. 불의 밝음이 손상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절이 힘들고 어두운 시절이란 의미다. 역사에 적용하면, ‘밝음[明]’은 명나라를 의미하고, 그 밝음이 손상된다는 것은 명나라가 큰 어려움에 처하고 결과적으로 망해간 것을 의미한다.


이 『명이대방록』의 첫 번째 장을 장식하는 것은 ‘군주란 무엇인가 하는 그 근원을 따져 본다[原君]’라는 것이다. 원군을 제일 먼저 거론하는 것은 국가의 흥망은 군주가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명나라가 망국에 처한 것은 결국 군주제 혹은 군주 그 자체에 근본 원인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황종희, 초상과『명이대방록』. 황종희의 호는 ‘리주(梨洲)’다



3. 『명이대방록』 : 군주제 비판과 군주무용론


황종희는 「원군」 첫머리에서 옛날의 군주란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일을 하고자 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어나면서 사람은 각기 사적이고 각기 자기 이익을 도모한다. (인류 초기에서는) 천하에 공적인 이익(公利)이 있어도 아무도 그것을 도모하지 않고 공적인 해악(公害)이 있어도 아무도 그것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누군가 나와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이익으로 여기지 않고 천하로 하여금 그 이익을 받게 하며, 자기 자신의 해악을 해악으로 여기지 않고 천하로 하여금 그 해악을 해소하게 하였다. 이 사람의 수고는 반드시 천하 사람들보다 천만 배이다.


인류 초기 집단을 이루고 사는 정황에서 군주가 등장한 배경을 밝힌 글이다. 인류 역사 초기에 나타난 군주는 천하의 이익을 추구하고 천하의 해로움을 없애고자 한 결과물이지 후대에 강조된 ‘천명을 받은 존재’ 혹은 신권신수설(神權神授說)에 의한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후대에 가면 정황은 달라진다.


“후대의 군주들은 그렇지 않다. 천하의 이해관계의 권한이 모두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천하의 이익을 모두 자기에게 돌리고 천하의 해를 모두 다른 사람에게 돌려도 된다고 생각하여,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사적인 이익[自私自利]을 추구하지 못하게 하면서, 자기의 매우 사사로운 일을 천하의 공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오래 지나면서 안주하여 천하를 커다란 기업으로 여겨 자손에게 전하여 무궁토록 향수하게 하려 하였다.”


과거의 군주와 달리 훗날의 군자는 천하의 모든 이익을 자신이 차지하고 백성을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멋대로 부릴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등 결과적으로 백성의 온전한 삶을 막는 해로운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백성이 주인이고 군주가 객이었던 관계가 전도되어 백성이 군주 때문에 도리어 편안하게 살 수 없는 정황이 벌어지게 된다.


오늘날 군주가 통치의 주체(主)가 되고 천하의 인민은 객이 되어 천하에 평안한 곳이 없는 것은 다 군주 때문이다. 그래서 천하를 얻지 못했을 때는, 천하 사람들의 간과 뇌를 해치고 천하 사람들의 자녀를 이산시키며 자기 한 사람의 재산을 늘리려 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나는 본래 자손을 위해 창업한 것이다”라고 한다. 이미 천하를 얻은 뒤에는, 천하 사람들의 골육을 착취하고 천하 사람들의 자녀를 이산시키며 자기 혼자의 음란과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당연시하여 “이것은 나의 재산에서 나온 이자”라고 말한다.


황종희의 기본 생각은 “백성이 주인이고 군주는 객[民主君客]”이고, “군주란 본래 백성의 필요에 따라 추대된 것”이라는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정황은 백성의 고통으로 이어진다고 본 황종희는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천하에 해로운 것이 바로 군주가 아니겠는가. 차라리 군주가 없다면, 누구나 자신의 뜻대로 살며, 자신의 이익이라도 챙길 수 있으리라. 아아! 어찌 군주를 둔 것이 본래 이와 같았겠는가!”


황종희는 명나라가 망한 원인이 근본 원인의 하나로 만력제(萬曆帝)나 천계제(天啓帝) 등과 같이 무능하고 우둔한 위인이 우연히 군주가 되어 나라와 백성을 위해 노력은 하지 않고 스스로의 쾌락만 추구하다가 결국 나라를 망친 이런 군주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황종희는 결론적으로 “민이 중요하지, 군주는 별것이 아니다.[民爲貴, 君爲輕.]”라고 말한 맹자를 성인의 말이라고 추앙한다.


옛날 천하의 사람들이 그 군주를 위하여 받드는데 아버지에 비기고 하늘에 견주었어도 진정 지나치지 않았다. 지금 천하의 사람들이 군주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이 마치 원수 대하는 것과 같고 그를 ‘독부(獨夫)’라고 이름하는데, 참으로 당연한 것이다...어찌 이 커다란 천지와 수많은 백성들 가운데 오로지 군주 한 사람만이 사사로이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무왕은 성인이고, 맹자의 말은 성인의 말이다.


맹자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民惟邦本]’이란 것을 말한 적이 있는데 이제 맹자의 ‘민귀군경(民貴君輕)’ 사유는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맹자는 잔인무도하면서 무능한 군주를 ‘일부(一夫)’라고 하였고 순자는 독부(獨夫)라고 불렀다. ‘일부’나 ‘독부(獨夫)’ 모두 민중에게 버림받은 독재자라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맹자를 높인 인물은 당대 한유(韓愈)인데, 한유가 맹자를 높인 것은 유가(儒家) 도통론(道統論) 차원에서 노불(老佛)을 이단시했다는 점에서 황종희와 차이가 난다.


이밖에 신하된 도리가 무엇인지를 밝힌 「원신(原臣)」에서는 우리[=신하]가 벼슬길에 오르는 것은 군주를 위해서가 아니고 천하를 위해서라고 한다.


“저 넓은 천하는 한 사람이 능히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관리를 두어 나누어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가서 벼슬을 하는 것은 천하를 위한 것이지 군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 만민을 위한 것이지 한 개 성씨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천하만민(天下萬民)의 견지에서 보는 것이므로 그 도에 어긋나면 비록 군주가 태도나 말로써 우리에게 강요하더라도 감히 따를 수 없다.”


신하된 자는 애민사상과 천하만민의 경지에서 백성을 바라보고 ‘천하위가’를 상징하는 ‘한 개 성씨’를 위해 복무하지 말라는 황종희의 이같은 말은 오늘날의 국가를 경연하는 공직자들이 되새겨야 할 말이라고 본다.

동진(東晉) 갈홍(葛洪)이 지은 『포박자(抱朴子)』(外篇) 「힐포(詰鮑)」에는 포경언(鮑敬言)이 군주제가 백성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그들의 자연스러운 성정에 위배되기 때문에 군주제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명대 당견(唐甄)은 “진대 이래 제왕 된 자는 모두 도적이다”라고 규정한다. 이처럼 중국 역사에는 군주제와 관련된 비판이 있었지만 황종희가 「원군」에서 천하에 해로운 것이 군주라는 입장에서 군주무용론을 주장하면서 독선적인 군주전제를 반대하고 인민을 위한 정치를 강조한 점은 혁명적이라고 평가된다.



4. 나오는 말


중국 근대 개혁사상가인 양계초(梁啓超)가 『중국근삼백년학술사』에서 『명이대방록』을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비유하면서 황종희를 중국의 루소 혹은 유교의 루소라고 규정한 적이 있는데, 황종희가 명이 왜 망했는가를 생각해본 결과 얻은 해답은 국정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는 세습된 군주 일개인이 국가를 소유하고 제멋대로 전횡한 결과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에 “왜 명이 망했는가 하는 것을 나에게 방문하여 물어보는 것을 기다리면서 그 해답을 적은 글”이라는 이른바 『명이대방론(明夷待訪錄)』에는 황종희가 생각한 올바른 군신관이 담겨 있는데,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