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 초상화의 시선과 신독(愼獨) (2)

  • 496호
  • 기사입력 2022.08.02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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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4. 기상론(氣象論)과 초상화의 덕휘미학(德輝美學)


이같은 ‘성물’로서의 초상화는 기본적으로 기상론에 입각한 덕휘미학이 담겨 있다. 즉 경모(敬慕)의 대상이 되는 초상화의 인물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롤-모델로서 자리매김될 수 있는 학문적 역량과 인품 및 도덕성을 갖춘 인물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사 때 사용한 초상화는 단순 인물화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익(李瀷)은 회화의 화목(畵目)에서 초상화를 가장 높이 평가하는데, 그것은 한 인간의 정신과 모습이 표현된 형상을 통해 후손이나 제자들이 사모하는 마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역사를 보면 고려조의 안향(安珦)을 비롯하여 조선조의 많은 유학자들이 주희 혹은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경모의 뜻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송시열(宋時烈)이 경모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미는 조선조에 접어들면 사대부 초상화 수요가 엄청났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살아 있을 때에는 섬기기를 예로 하며, 죽은 뒤에는 장사를 예로 하며, 제사를 예로 하면 가히 효라 할 수 있다는 유교주의적 관념하에 배태된 사당, 영당의 발달로 인해 사대부 초상화 제작이 활기를 띠었다. 나아가 조선조 중기 이후로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시발로 하여 숭현(崇賢) 사상이 팽배하게 되자 이른바 일반 사우나 서원 부속 사우에서 자신들이 숭모하는 인물들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향사하기 위한 사대부 초상화의 수요가 엄청났다.


조선조에서 사대부 초상화 수요와 관련된 이런 현상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 하나로, 경모하는 대상의 초상화를 통해 그 인물의 학문적 업적, 인물 됨됨이 및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알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초상화와 관련된 이같은 사유에는 기본적으로 기상론 차원의 덕휘미학이 담겨 있다. 동양 예술문화에서는 회화를 사의화(寫意畵)라 하고, 서예는 ‘마음의 (정감을 표현한) 그림[心畵]’으로 여긴다. 조선조 유학자들은 이런 점에서 마음의 정감을 표현한 필적(筆跡)에는 그 인물의 덕의 기운과 관련된 기상론을 말한다. 권상하(權尙夏)는 송시열이 쓴 ‘神明其德, 對越上帝’라는 필적을 보고 쓴 글에서 이런 점을 강조하고, 아울러 필적을 통한 ‘對越上帝’ 의식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서예의 필적을 통해 ‘대월상제’를 말하는 이같은 사유에 담긴 기상론 사유와 그 종교성은 초상화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즉 심화(心畵)로서 서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사유는 전신사조(傳神寫照)를 강조하는 초상화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초상의 대상이 조선일 경우에는 종교적 성격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조선조 사대부들은 사당을 세우면 조선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그 위의(威儀)가 나타나 있는 초상화를 함께 모시고자 하였다. 이런 정황에서 조선의 살아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체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은 바로 초상화다. 초상화에 조선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그 위의(威儀)가 나타나 있다고 여기는 사유에는 덕휘 미학이 담겨 있다.


침묘(寢廟)나 사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경모의 대상인 조선은 이미 죽었지만 제사를 지낼 때는 마치 살아서 앞에 와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울러 동기감응(同氣感應) 차원에서는 초상화를 통해 조선과 후손의 기(氣)가 서로 전하는 것은 느낄 수 있다. 이에 초상화는 단순 인물화가 아닌 ‘성물’ 차원의 초상화가 된다.


5. 신독(愼獨)과 ‘대월상제(對越上帝)’ 의식


조선조 사대부 초상화는 거의 한결같이 고요히 한곳을 응시한 절제된 표정과 엄숙단정한 공수(拱手) 자세로 그려져 있는 것은[도판 4와 5] 유가의 신독과 경외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몸가짐이다. 사대부들의 초상화에 보이는 정제엄숙한 경외적 몸가짐과 긴장된 정면 응시의 눈동자 형상에는 신독 혹은 근독(謹獨) 사유에 담긴 ‘대월상제’의 종교성이 담겨 있다.


먼저 김홍도 자화상[B:도판 3]에 보이는 자화상의 정제엄숙한 몸가짐의 외적 형상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보자. 유가는 ‘극기복례(克己復禮)’와 관련하여 외적 차원의 ‘제외양중(制外養中)’과 ‘제외안내(制外安內)’ 등을 말한다. 이것은 외적 몸가짐의 단정함과 행동거지의 정제엄숙함은 내면의 마음가짐을 반영하고 단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유가는 외적 옷차림과 몸가짐을 통해서 타인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고 평가를 받는다고 여기는데, 이런 점에는 기본적으로 신독을 강조한다.  『大學』 6장에서는 신독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마는 것[毋自欺]’이니, 惡을 미워하기를 惡臭를 싫어하듯이 하고, 善을 좋아하기를 好色을 좋아하듯이 하여야 하니, 이것을 自慊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愼獨]’이다.


‘무자기’를 기반으로 한 신독은 종교성을 띠고 있다. 『대학』의 ‘무자기’와 관련된 신독은 『중용』 1장에서 계신공구(戒愼恐懼)의 경외 철학을 통한 ‘존천리(存天理)’를 강조하는 사유와 관련이 있다. 계신공구의 경외 철학은 ‘거인욕(去人欲)’의 ‘신독’ 사유로도 이어진다. 이에 유학자들은 항상 남이 보는 것 여부와 상관없이 홀로 있을 때  몸가짐 그 자체의 정제엄숙함에 유의하였다. 특히 눈동자는 홀로 있을 때의 마음 상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눈동자에 신경을 쓰는데, 전신사조를 강조하는 초상화에서 눈에 신경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사에 모시는 초상화 인물이 정제엄숙한 몸가짐을 한 상태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에는 바로 신독의 사유가 담겨 있다.


신독은 ‘근독(謹獨)’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같은 근독은 유가의 종교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학에서는 근독을 ‘하늘을 섬기는 일[事天之事]’로 풀이하는 것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상제가 임한 듯 경건하게 행동한다’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상제가 임한 듯 경건하게 행동하라는 것은 주희가 「경재잠」에서 말한 ‘대월상제’의 다른 표현에 해당한다.


유학자들이 항상 근독의 자세로 ‘대월상제’하면서 자신을 수양하는 삶은 종교적인데, 그 전제조건이 되는 외적 형식은 ‘정결히 재계하여 제복을 갖추고, 그윽한 방에 단정히 앉아 홀로 있는 곳에서도 엄숙하게 항상 우러러 대하게 하는 것’과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전일하게 하면서 성심성의 차원의 몸가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런 발언은 김홍도의 [그림 3]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정이(程頤)는 ‘무불경(毋不敬)’을 ‘대월상제’의 전제조건으로 여긴 적이 있다.


6. 나오는 말


이처럼 신독 즉 근독을 ‘하늘을 섬기는 일[事天之事]’로 풀이하는 것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上帝가 임한 듯 경건하게 행동하라는 것을 ‘대월상제’와 연계하여 이해한 것에는 윤리성 이외에 종교성이 담겨 있다. 이런 경건함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성은 구체적으로 사대부들이 제사를 지내는 초상화에 투영되어 초상화의 정제엄숙한 몸가짐과 경외적 시선으로 표현되었다고 본다. 아울러 이런 의식은 암암리에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주어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경직된 자세를 하면서 시선을 직시하는 정제엄숙한 표정을 짓곤 하였다고 본다.


▲ 도판 4: 이명기·김홍도(李命基·金弘道 筆), 〈서직수 徐直修 像〉


▲ 도판 4 :  이채(李采), 〈초상 肖像〉 얼굴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