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광기(狂氣)와 예술 (Ⅰ)

  • 473호
  • 기사입력 2021.08.13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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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우리의 예상을 깨는 다음과 같은 시 한구절을 보자.

                  


흔히 광기라는 용어가 매우 부정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처와 광기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이 말은 경사자집(經史子集) 및 예술분야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던 청대 학자 유희재(劉熙載)가 ‘미친 사람[광자(狂者)]’에 대해 읊은 시다. 불가 쪽에서는 부처의 삶을 광자에 비유하여 말한 것을 용납할 수 없고 혹 기분 나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희재가 말한 속내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유가 성인도 중생을 가엽게 여긴다. 다만 윤리의 최고경지에 오른 유가 성인이 지향하는 바가 중생의 무지몽매함에 의한 윤리 차원의 악을 선으로 개조하고자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부처야말로 진정으로 중생의 고통을 한마음으로 가엽게 여겼다는 그 속내를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부처를 유가 성인보다 더 높인 것을 알 수 있다.


유희재의 이같은 발언은 ‘광자’하면 배척하거나 구금해야 할 부정적인 인간상으로 여기는 사유와 비교하면 매우 발칙하면서도 파격적인 발언에 해당한다. ‘어떤 삶을 살았던 광자’냐에 따라 광자에 대한 긍정과 부정 두가지 측면이 있지만, 광자의 긍정적인 면을 잘 살리면 이 세상은 광자가 많을수록 더욱 희망찬 세상이 펼쳐지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그럼 광자를 어떤 인물로 여기었기에 유희재는 이와 같은 파천황적인 발언을 하는 것일까?


눈을 잠시 다른 주제로 돌려 ‘리(理)’의 ‘극존무대(極尊無待)’를 통한 존리(尊理) 철학을 전개한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읊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중 한 대목을 보자.


                                                                                       


퇴계가 말하는 ‘고인(古人)’은 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문왕, 무왕, 공자 등과 같은 위대한 성인(聖人)을 의미한다. 그런 고인은 이미 세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간에 볼 기회는 없다[고인도 날 몯 보고 나도 고인을 몯 뵈]. 그런데 이황은 지금 그런 고인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 고인이 앞서서 이미 ‘갔던 길[녀던 길]’은 앞에 있고[알 잇], 따라서 고인들이 갔던 길이 앞에 있으니 내가 ‘어찌 아니 갈 것인가[아니 녀고 엇덜고]’라고 다짐하고 있다. 즉 이황은 이미 공자와 같은 성인은 이 세상에 없지만, 그 성인의 발자취와 사상은 다양한 ‘책[이른바 경서(經書)로 일컬어지는 것]’에 남아있기 때문에 후천적 학습을 통해 그 성인들이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겠다는 희망을 피력한다. 성인들이 갔던 길은 ‘인간이면 마땅히 따라야만 하는 보편타당하고 당위성이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유학에서는 이런 점에서 ‘배움[=학(學)]’은 바로 그런 고인이 갔던 길을 ‘그대로 본받는 것[=효(效)]’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것은 일종의 ‘옛것을 본받는 것[법고(法古)]’ 사유에 입각하여, 옛 것을 본뜨는 것[의양(依樣)] 혹은 답습(踏襲)한다는 의미가 있다. 물론 공자는 ‘옛것에 대한 충분한 체득[=온고(溫故)]’ 이후에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미래에 대한 앎[지신(知新)]’을 강조하여 ‘고(故)[=고(古)]’에 머무는 것만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가가 지향한 실질적인 삶과 역사를 보면 지신보다는 온고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물론 유가가 주장하는 ‘학’이 주는 장점이 있다. 그 길은 윤리적인 길, 이타(利他)적인 길이고, 큰 실수 없이 무난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편리한 길이면서 일정 정도 보편 타당성을 띤 길이다. 유학자들은 이런 길에 당위성을 부여하면서 이상적으로 여기고, 그런 길을 간 상징적인 인물을 성인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 길이 묵수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강요할 때는 때론 몰주체적이면서 체제 순응적인 길이 된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특히 법고 사유만을 강조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영역 혹은 분야가 있게 된다. 창의성을 요구하는 철학, 예술, 과학 분야에서는 이런 문제점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인생과 관련된 ‘길’에 대한 시어를 통해 그런 점을 확인해 보자. 월트 휘트만은 시집 『풀잎』의 서문에서 “인생은 당신이 배우는 대로 형성되는 학교다”라 한 적이 있고, 폴 발레리는 「당신은」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읊은 바가 있다. 인생에서 어떤 길을 선택해 살 것인가를 요구하는 이 시들에서, ‘배운 대로’ 살 것인지, ‘생각하는 대로’ 살 것인지의 기로에서 선택은 개인에게 있다.


최근 인간의 창의성이 가장 잘 표현되는 회화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창작품이 인간의 예술성에 도전장을 던졌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다. 이제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주체로서 인간이 배제한 상태에서도 예술작품의 생산이 가능하고, 이에 창작과 예술의 주체인 인간의 지위가 도전받는 현상이 도래하리라 전망하곤 한다. 이제 “(자신은) 기존의 위대한 성인들이 말씀하신 것을 그냥 서술했을 뿐, 스스로 창의적 견해는 짓지 않았음[술이부작(述而不作)]”을 전제로 공자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공자 인공지능 철학자’가 탄생할 수 있다. 법고 차원의 예술을 펼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왕희지 인공지능 서예가’가 탄생할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공자성적도(孔子聖迹圖)〉: ‘초광접여(楚狂接與)’
『논어』에는 초나라 광인인 접여[?~?. 초 은사 육통(陸通)의 자. 초광(楚狂)이라 일컬어진다.]가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나면서 “‘봉황새여! 봉황새여! 어찌 덕이 쇠하였는가? 지나간 것은 간할 수 없고, 오는 것은 오히려 따를 수가 있다. 그만두어야 한다! 그만두어야 한다! 이제 정치에 종사하는 이들은 위태롭다’라고 노래 불렀다. 이에 공자께서 수레에서 내려 그와 함께 말하고자 했다. 그러나 빨리 걸어 피하는 바람에 그와 함께 말할 수는 없었다.(〈공자성적도〉 문구 내용 참조)”라는 기사가 나온다. 양광불사(佯狂不仕)한 접여의 말에 화를 내지 않고 수레에서 내려 좇아간 공자의 자세를 통해 공자가 광자를 무시하지 않은 점과 아울러 진리에 대한 열정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접여는 『장자』 등에서 이른바 광언(狂言)을 말하면서 재차 의미심장하게 등장한다.



미래에는 과거 지식이나 경험 혹은 기법의 축적을 통해 위대하다고 평가된 인물의 경우에는 이제 이 같은 가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경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이 인공지능이란 게 범접하지 못할 영역이란 없을까? 그 해답의 하나로 중국문화와 철학, 예술에서의 ‘광자정신(狂者精神)’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동양철학과 예술에서 제기된 광자정신의 핵심엔 도가사상이 자리잡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장은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도道’의 경지를 통해 ‘황홀’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정신영역을 개척한다. 아울러 장주(莊周=莊子)는 ’나비가 되는 꿈[호접지몽(胡蝶之夢)]’을 꾼다. 이같은 사유 영역은 광자들이 지향하는 사유의 근간이 되었고, 인공지능이라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길에 대해 독창적으로 철학적 사유를 한 노자와 장자의 길에 대한 발언을 보자. 노자는 “흔히 이런 길이 올바른 길이어야 하는 것은, 진짜 올바른 길이 아닐 수도 있고 또 다른 길도 있을 수 있잖아[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라 일갈하고, 장자는 “길이란 가면 그냥 생기는 것이야[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라고 하여 인간이 생각하는 ‘길’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질문과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성인이 갔던 길에 대해 명대 왕수인(王守仁)이 “이전 수없는 성인은 모두 지나가는 그림자다[천성개과영(天聖皆過影)]”라고 대놓고 도발적인 발언을 한 것도 노장의 이런 사유와 무관하지 않다.


정주이학자(程朱理學者)의 시각에서 보면, 유가 성인의 길을 무시하는 노자, 장자, 왕수인은 모두 세상 실정을 무시한 ‘미친소리[=광언(狂言)]’를 한 것에 해당한다. 이에 이단시한다. 그런데 그들의 광언은 진정한 진리 탐구 및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결과물이란 의미의 ‘지극한 진리의 말[지언(至言)]’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중국역사상 그런 광언과 지언에 긍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자 했던 인물들이 바로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광자(狂者)였다. 광자는 내용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중용(中庸), 중행(中行)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끝까지 지켰던 ‘긍정적 고집불통’인 견자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말해지곤 한다.


“아아! 이 세상에 공자가 없었다면 천하에 누가 다시 광의 진면목을 헤아렸겠는가?”


이 말은 성령설(性靈說)을 주장하면서 식취(識趣)를 통해 광자를 새롭게 규정한 공자의 ‘사광(思狂)’에 대한 원굉도(袁宏道)의 평가다. 누구보다도 광자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보였던 이지(李贄)는 ‘광을 사랑하라[애광(愛狂)]’는 것과 공자가 ‘광자의 진면목을 헤아려 준 것[사광(思狂)]’을 동시에 말한 바가 있다. 정주이학자들은 윤리적 측면, 사상적 측면에서 대부분 광자를 비판적으로 평가하지만, 이른바 왕수인의 양명학에 훈도(薰陶)된 인물들은 광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중화철학과 중화미학을 주장하는 주희(朱熹)를 중심으로 한 정통 유학자들의 귀에 원굉도의 이 말은 매우 거슬리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정할 수만 없는 사실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공자가 ‘공석불난(孔席不暖)’[혹은 공불난석(孔不暖席)]이라 할 정도로 수레를 타고 13여 년이란 긴 시간 중국천하를 주유하면서 천하무도(天下無道)의 사회를 천하유도(天下有道)로 만들고자 했을 때, 온갖 고난을 겪으며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상당수 인물들이 알고 보면 광자와 견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자로(子路), 자공(子貢), 자하(子夏) 등과 같은 공문孔門의 ‘십문十門 제자’들도 있었지만 ‘상갓집 개’와 ‘궁절(窮節)’한 공자의 삶에서 광견으로 평가된 제자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육치(陸治), <유거락사도(幽居樂事圖)>, 29.2×51.7㎝.
홀로 산책을 나왔다가 버드나무가 드리운 들판의 바위에 두팔을 묻고 잠깐 낮잠에 빠진 은사를 그렸다. 왼편 상단에 ‘몽접(夢蝶)’이라 쓰여있다. 은사의 머리 위에 두 마리 나비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물아일체를 말하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그린 것인데, 은사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시점을 그린 것이다. 동양문학사에 나타난 꿈과 관련된 창의적 소설[남가지몽(南柯之夢), 구운몽(九雲夢)]은 모두 장자의 호접지몽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중국서화사의 최대의 수장가 중 한사람인 명대 항자경[=항원변(項元汴)]의 인장인 ‘항자경가진장(項子京家珍藏)’이 찍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