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메시지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교 허유진(수학 06) 교수

  • 531호
  • 기사입력 2024.01.13
  • 취재 이준표 기자
  • 편집 장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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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역사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항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인간관계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를 연구하는 커뮤니케이션학 또한 현대에 들어서며 그 중요성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다. 우리 대학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여 신문방송 등 대중매체는 물론, 개인 간 및 조직 내외에서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 현상들을 포괄하고자 신문방송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으로 학과 명칭을 변경했다.


오늘 소개할 허유진 교수는 우리 대학 수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심리학을 깊이 연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enn State)에 조교수로 재직 중인 허유진입니다. 저는 성균관대 학부와 석사를 졸업했고, 미국 University of South Carolina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Penn State 내 The Donald P. Bellisario College of Communications의 AD/PR Department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성균관대학교에서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 대학까지 가시게 된 과정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원래 성균관대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학생이었는데, 막연히 언론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전공과목으로 들었던 전략 커뮤니케이션 과목 수업에서 저의 은사님이신 정성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것이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학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학부 졸업 후, LG CNS에 입사하여 컴퓨터 프로그래밍 업무를 잠시 한 적이 있지만,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와 정성은 선생님의 지도 아래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당시 두 돌 배기 아이를 키우고 있어, 박사 유학을 많이 망설였는데요. 공부를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라는 지도교수님의 조언에 큰 용기를 내어 박사 유학에 도전했습니다. 이후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박사 과정 마지막 학기에 잡마켓에 나가 작년 가을 Penn State에 조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Q.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나요?


저는 현재 Penn State에서 광고 메시지를 중심으로 한 전략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이해가 중요해진 요즘 인간과 AI의 상호작용이 소비자의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그들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AI 미디어 활용에 따른 윤리 문제나 규제 문제에 관한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험 등의 양적 연구 방법론컴퓨테이셔널 방법론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Q. ‘전략적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심리학’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 오셨던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와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 Mass Communication and Society라는 커뮤니케이션학 저널에 게재가 확정되어 출판을 기다리고 있는 논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Why do People Underestimate Polling Effects? Examining the Gap Between Actual and Perceived Polling Effects”라는 제목의 미디어 심리학에 관련된 논문인데요. 기존의 연구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미디어 메시지가 자신의 의견에 미치는 영향은 과소평가하고,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몇몇 학자들이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편향된 지각을 갖게 하는지 밝히고자 했으나, 연구 방법론상의 문제로 오랜 시간 이에 대한 검증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와 제 연구팀은 기존 연구의 한계를 분석, 보완하여, 미디어 메시지가 수용자의 기존 입장을 약화시킬 때, 사람들이 메시지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제 연구가 다른 연구와 차별화 되는 독특한 점은 체계적으로 메시지 영향력 지각의 편향 정도를 측정했다는 점과 “미디어 메시지에 의한 기존 입장의 변화”라는 새로운 변수를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연구 결과도 흥미롭지만, 이 연구가 기억에 남는 가장 큰 이유는 2015년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저널에 싣기까지 장장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에요. 저널에 투고했다가 거절당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논문을 자그마치 몇 백 번은 고쳐 쓴 것 같아요. 도중에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끝까지 붙잡고 있었기에 결국 좋은 결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긴 여정을 이끌어 주신 지도교수님과 같이 고생해 주신 팀원들에게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앞으로 학자로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게 될 텐데, 지난 8년 동안의 오롯한 실패와 도전의 경험들이 저에게 큰 자산이 될 것 같습니다.


Q. 해외 대학교에서 근무 하면서 좋은 점과 힘든 점을 알려주세요.


미국 대학교에서 일하며 좋은 점은 유연한 근무 환경을 제공받는다는 점이에요. 특히 새내기 교수의 경우 마음 놓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서비스에 대한 부담도 거의 주지 않아요. 제가 맡은 수업을 펑크내지 않는 이상, 일주일에 학교에 며칠이나 나오는지, 출퇴근은 언제 하는지 아무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수업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제 임의로 자유롭게 쓸 수 있고, 그 시간을 이용하여 제가 관심 있는 주제로 자유롭게 연구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힘든 점은 아무래도 언어장벽이 있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다 표현이 안 될 때가 있어요. 외국인 교수로서 외국 대학교에 근무하는 이상 평생 고민해야 할 숙제인 것 같아요. 또한, 제가 College 내 유일한 한국인 교수라는 점이 좀 아쉬워요. 동료 교수들과 티타임도 갖고, 점심도 먹고, 서로의 자녀를 데리고 플레이 데이트도 하는 등 즐겁게 잘 지내고 있지만 가끔은 한국인 동료와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말로 수다를 떨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Q. 대학원 재학 시절 연구실 생활이 어떠셨는지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석사 때는 지도 교수님과 정기적으로 만나 공부하던 시간들이 기억에 남아요. 저의 지도 교수님께서는 아무것도 모르던 저희를 앉혀 놓고, 논문 읽는 법부터 통계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데이터를 분석하는 법, 기존의 연구에 물음표를 던지는 법 등을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가르쳐 주셨어요. 그때는 모든 대학원생들이 다 그렇게 지도받는 줄 알았는데, 박사에 진학하고 나서야 제가 특별한 경험을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늘 유쾌했던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 행복하고 재미난 삶을 살 수 있는 지혜도 배울 수 있었어요. 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할 때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선생님을 찾아 뵙는 일인데요. 오늘은 또 어떤 귀한 말씀을 해주실까 생각하며 선생님을 뵈러 가는 그 길은 여전히 즐겁고 신납니다.


박사 유학 시절에는 동료들과 같이 지낸 랩 생활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희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박사 과정 학생들이 큰 연구실에서 함께 생활을 했는데요. 다 같이 모여 수업 과제를 했던 일, 학회 페이퍼 데드라인 직전에 힘을 모아 페이퍼를 마무리했던 일, 티칭을 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나누었던 일, 동료들의 크고 작은 이벤트 등을 축하했던 일 등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함께 울고 웃던 동료들이 있었기에 힘든 박사 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가 되어 저만의 연구실을 갖게 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가끔 복작거리던 대학원 랩실이 그립습니다.

제 대학원 생활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육아가 있겠네요.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며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밀린 과제를 하느라 늦은 밤까지 깨어 있는 날이 많았어요. 지금 다시 그 생활을 반복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은데 (웃음), 그래도 존재 자체만으로 제게 힘을 주는 두 아이들이 있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끝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Q. 성대 재학 시절 교수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교수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착실히 수업을 듣고, 학점을 관리하던 학생이었어요”라고 대답해야 정석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매우 먼 학생이었습니다. (웃음) 고등학교 시절, 저는 제가 수학을 잘하고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으로 하려니 적성에 맞지 않더라고요. 출석만 대충 하고 수업 때 도망간 적도 많아요. 당연히 학점도 좋지 않았죠.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졸업하기까지 6년이나 걸렸습니다. 오죽했으면, 졸업 시험 중 한 과목을 담당하셨던 교수님께서 네가 성균관대 수학과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라 그러나 수학과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잊지는 말라 하시며 수학자의 역사가 담긴 브로마이드를 선물로 주셨던 기억이 나요. 비록 열심히 전공 공부에 매진하던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의 저는 치열하게 고민하며 제 진로와 적성을 찾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아직 길을 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후배님들이 계시다면, 여러분의 가슴을 진정으로 뛰게 하는 일을 만날 때까지 최대한 많은 경험과 도전을 해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고 싶은 목표가 있을까요?


먼저 끊임없이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멋모르던 때에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논문을 써야만 좋은 연구자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연구란 결국 한 걸음 한 걸음 쌓아가는 과정이며, 사소한 발견일지라도 그 안에 큰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구에 매진하며 학계에 작은 디딤돌이나마 꾸준히 놓는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한 제 연구들이 세상을 발전시키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특출 난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은 수업을 빼먹는 법도 없고, 과제 마감 기한을 잘 지키고, 시험 성적도 좋습니다. 그런 학생들을 만날 때면 기특하고 고마워요. 제가 대학 시절 방황을 많이 해서인지, 잘 따라오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보면 더 마음이 가요. 제 수업에 들어오는 모든 학생들이 저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속에 힘을 받고 교실 문을 나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해외에서 교수직을 희망하는 후배들을 위한 방법 혹은 필요한 마음자세가 있을까요?


교수가 되고자 한다면 박사 기간 중에 달성해야 하는 과업들이 있습니다. 학회 발표, 논문 게재, 티칭 등 인데요. 여러분보다 조금 앞서 교수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들의 이력서(CV)를 잘 살펴보시면, 어떠한 준비들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이를 바탕으로 졸업까지 여러분들이 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타임라인을 설정하시고, 각 시기에 맞게 해당 계획들을 차근차근 달성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박사 유학 후 교수가 되는 길이 굉장히 막연할 것 같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 하나씩 이루어 나가다 보면 졸업 즈음 잘 준비된 교수 후보자가 되어 있을 거예요.


커뮤니케이션 전공과 관련하여 해외 교수직을 희망하는 후배님들이 있다면 성균관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대학원 진학을 강력히 권유합니다. 우리 학과에는 여러분께 귀중한 조언과 가르침을 주실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저와 같은 시기에 그분들의 지도 아래 공부했던 많은 동료들이 현재 국내외 유수한 대학에 자리를 잡아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성균관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대학원에서 즐겁게 공부하시며 학자의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성균관대 학생들에게 응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스스로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주세요. 어려운 입시를 뚫고 성균관대에 입학한 여러분은 이미 충분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꿈이 없어도 괜찮아요. 조금 늦어도 괜찮아요. 실패해도 괜찮아요. 빠른 시일 내에 무언가 이루어야만 한다는 강박은 잠시 내려놓고, 가끔은 맛있는 것도 먹여주시고, 근사한 곳도 데려가 주시고, 잘한다 잘한다 칭찬도 해주세요. 여러분 스스로를 믿고 다독이며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여러분이 원하는 그곳에 있을 겁니다.